미국 캘리포니아에 온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이곳은 작년에 재선된 주지사에 대한 소환과 차기 주지사 선거전이 한창이다. 주지사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10월 7일 선거를 앞두고 치열한 TV 토론과 선전이 펼쳐지고 있다.이번 선거에는 언뜻 보면 우스꽝스러운 면과 이해하지 못할 면이 있다. 작년 11월에 당선된 주지사는 왜 1년도 못되어 소환 대상이 되었으며 135 명의 후보 난립은 또 무엇인가. 전통적인 민주, 공화당 후보 이외에 포르노 배우, 목수, 코미디언 등의 출현은 처음에는 치기로까지 여겨졌다.
많은 사람들이 현 주지사의 개인적 문제, 즉 감흥 없는 연설, 조각 같은 무미한 인상, 관료적 분위기 등을 소환의 원인으로 보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교통문제, 세금인상, 실업, 교육의 질 저하 등 구체적인 정책 문제에서 그 요인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정책적 문제들은 계속 존재해 왔고, 주지사 개인의 문제는 다음 선거를 통해 해결될 수 있었다고 본다면, 이번 소환의 근본 원인은 계층을 초월한 정치에 대한 짜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정치적 짜증은 실리콘 밸리에서 시작된 캘리포니아 특유의 경제 붐이 거품으로 터지면서 나타난 일종의 심리적 공황에서 기인한다.
당시 캘리포니아는 경제 호황과 더불어 임금과 집값이 상승했으며 소비 수준이 높아졌다. 더욱이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감세 정책을 시도하고 지출을 늘려 경기 진작의 기름을 부었다. 그러나 정보기술(IT) 경제의 거품이 터지면서 남은 것은 교통지옥과 실업의 증가, 그리고 주예산의 심각한 적자였다. 이에 따라 교육의 질은 엉망이 되고 많은 학교에서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해졌다.
문제는 IT 산업의 특성으로 인해 사회 경제적 불만을 과거처럼 특정 계급이나 계층에 돌리기가 어렵게 됐고, 그 결과 사회 전체의 짜증이 정치가로 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번 주지사 소환의 사회적 배경은 전통적인 보수-진보, 민주-공화의 경계선을 초월한 것으로 135 명이라는 후보자의 수가 이를 대변한다. 자신들의 문제를 기성정치의 탓으로 돌리는 주민들이 새로운 사람을 찾게 되면서 경험이 오히려 약점이 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대 정치의 특징을 보게 된다. 세계화와 신기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이전과 같은 단순 이분법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에서도 고정적 지지 기반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리더에 대한 의존도는 한층 높아진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그 시점에 리더는 홀로 미래에 나타날 상황에 대비해야 하며, 그에게는 자신의 고정 관념을 고집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또한 상황이 어려울 때 리더는 사람들의 심리적 공황을 어루만져 안심시킬 수 있는 품성과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캘리포니아의 소환정치는 기존 정치 과정과 구조가 급변하는 현실을 따라 잡지 못할 뿐 아니라, 이 격차를 메울 리더가 없는 상황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외환 위기의 충격에서 보-혁에 관계없이 허덕이는 사회,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는 아랑곳없이 보-혁의 낡은 구도 속에서 계속 싸우고 있는 정치인, 사회 전반을 아우르고 보듬지 못하는 리더십, 이것이 우리 한국의 모습이라면 과연 우리는 캘리포니아의 현 상황을 남의 일이라 할 수 있을까.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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