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잠실구장. 프로야구 삼성-LG전이 벌어진 이곳에서는 시시각각 진풍경이 빚어졌다. 경기 시작 1시간여전인 오후 5시께 전례없이 외야석이 내야보다 먼저 매진됐고, 이어 관중수 만큼의 잠자리채와 물고기 뜰채가 공중을 날기 시작했다.경기장 바깥도 북새통을 이뤘다. 오후 4시께부터 구장 입구에는 잠자리채 등을 파는 상인들과 이를 사려는 관중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고 2,000원짜리 외야석 암표값이 5만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승엽 홈런 신드롬이 가져온 현상들이다. 가뜩이나 가라앉아 있는 프로야구와 국내 여러 상황에 청량제가 될 만 하다는 생각에 흐뭇한 느낌마저 앞섰다.
그것도 잠시. 이승엽이 볼넷으로 걸어나가자 곳곳에서 욕설과 함께 물병과 오물이 그라운드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경기는 잠시 스톱. 이어 "우리는 돈 벌러 왔다" "30억이다"라는 야유와 고함이 터져나왔고, 그라운드는 또 오물로 뒤덮였다. 30일 밤 경기에서도 똑 같은 장면이 목격됐다. "저 사람들중 상당수는 야구팬이 아니예요. 한탕 노리고 온 사람들이예요." 함께 경기상황을 예의주시하던 야구계 관계자의 귀띔을 듣곤 아파트 모델하우스 앞에 장사진을 친 '떴다방'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이승엽이 29일 마지막 타석에서 또 볼넷을 기록한 연장 11회초. 경기는 아직 진행중이었지만 관중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외야석은 쓰레기만 가득 쌓인 흉물로 변했다. 야구계 인사의 고언처럼 이들을 모두 '홈런볼 투기꾼'으로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승엽 홈런신드롬이 빚은 현상들은 각종 투기로 얼룩진 우리의 자화상과 닮은 꼴이라는 생각은 지우기 어려웠다. 잠자리채가 커질수록 (스포츠)문화는 죽고 그곳에는 피폐함이 웃자랄 것이라는 걱정과 함께.
최형철 체육부 기자hc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