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딘이 주연한 영화 '에덴의 동쪽', 테네시 윌리엄스 각본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으로 유명한 엘리아 카잔 감독이 18일(현지시각)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탄탄한 극 구성과 '냉정한 리얼리스트'로 불리는 사회의식으로 미국을 대표한 감독인 카잔은 한편으로는 매카시즘에 굴복한 '배신자'라는 낙인 속에서 살아야 했다. 1999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 수상자로 결정됐을 때도 그의 공적과 과오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했다.
1909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태어난 그는 그리스인 아버지를 따라 두 살 때 베를린으로 이주했고, 이어 미국 뉴욕에 정착했다. 예일대에서 연극을 전공한 뒤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그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의 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1945년 '브루클린에서 자라는 나무'를 연출해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후 47년 반유대주의를 소재로 한 '신사협정'으로 아카데미 작품, 감독, 여우주연상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그가 47년 세운 '액터즈 스튜디오'는 스타의 산실이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51년)의 주연 말론 브랜도, '에덴의 동쪽'(55년)의 제임스 딘, '베이비 돌'(56년)의 캐롤 베이커, '초원의 빛'(61년)의 워렌 비티와 나탈리 우드가 이곳 출신.
그는 52년 의회에서 공산당원이었음을 고백하고, 동료 당원의 이름을 발설하는 한편 뉴욕타임스에 공산주의자 색출을 촉구하는 글을 써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아카데미 작품, 감독상등 6개 부문 수상작인 대표작 '워터 프론트'(54년)에서 마피아와 결탁한 노조의 이야기를 그린 것을 두고, 노조와 좌익 세력의 도덕적 흠집 내기에 영화를 이용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정점에 달한, 영화에 생생한 현실감을 불어넣는 네오 리얼리즘의 연출 기법은 그의 필생의 업적으로 꼽힌다. 이후 그는 '에덴의 동쪽' '초원의 빛' 등 완성도 높은 상업영화에 매진했다.
카잔의 일생은 화려한 영광과 뚜렷한 오욕의 그것이다. '워터 프론트'에서 동료 노조원을 고발한 테리 멀로이(말론 브랜도)는 "난 내가 한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외쳤지만, 그의 인생은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었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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