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가 기억하는 1980년대 전반기는 회색에 가깝다. 그 암울한 시절에 대머리 코미디언 이주일(본명 정주일·2002년 8월 작고)이 안방극장에 홀연히 등장해 좌절과 실의에 빠진 국민들을 웃겨주었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이 한마디로 국민들을 눈물이 나도록 웃겼다. 잿빛 시대를 자조와 체념으로 보냈던 당시의 못난 국민들은, 더 못생긴 한 코미디언에게서 반전(反轉)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80년대의 안방극장에 이주일이 있었다면, 당시 전국의 1만여 만화방에는 못생기고 왜소한 체격의 꺼벙이 만화주인공 '구영탄'이 전성시대를 구가했다.톱니바퀴같이 비쭉비쭉 위로 솟구친 헤어스타일. 언제나 눈꺼풀이 반쯤 덮여있는 멍한 얼굴, 깡마르고 왜소한 체격이다. 그러나 이런 꺼벙한 '구영탄'도 사회정의를 어지럽히는 깡패라든가, 자신의 애인을 못살게 구는 놈들을 보면 열을 받아 그야말로 순식간에 수퍼맨으로 돌변한다. 온갖 권법과 도술을 구사하는가 하면 그 가녀린 팔뚝에서 울트라 파워가 솟구친다. 말하자면, 주눅들고 쪼그라든 당시 국민들에게 '만화적 재미'로 대리만족을 경험하게 했던 것이다.
고행석(63) 선생이 구영탄을 만화 주인공으로 처음 등장시킨 것은 1983년 '불청객'시리즈에서였다. 선생은 "평범하고 못 생긴 보통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찌들고 지쳐있던 당시 젊은 독자들에게 시원한 공감(共感)의 웃음을 선사하고자 했다"며 "그래서 주인공의 이름도 도시서민의 땔감인 '구공탄'을 연상시키는 이름으로 지었다"고 소개한다.
구 선생은 전남 여수고를 졸업하고 1973년 군에서 제대한 뒤 33세의 늦은 나이에 만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최경, 박기정 선생 문하에서 8년 여 지우개로 연필선을 지우는 일로부터 인물의 펜선 터치에 이르는 만화창작 전 과정을 떼었다. 데뷔작 '아빠아빠 우리아빠'를 발표한 것은 41세가 되던 81년이었다.
그러나 1983년 구영탄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불청객'의 발표는 단숨에 그를 최고인기 만화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운이 좋았다기보다는 '갈고 닦은 실력'이 한꺼번에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고 해야 옳을 듯싶다. 이후 '요절복통 불청객' '서울 불청객' '기공천하 불청객' 등 그의 불청객시리즈는 무려 200권이 넘게 발행되었고 그때마다 인기행진은 이어졌다. 시리즈의 타이틀이 달라질 때마다 주인공 구영탄의 역할도 조금씩 변화하지만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정의의 사도라는 캐릭터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늦깎이로 발을 디딘 만화계였지만 고행석 선생은 우리 만화 판에서 그 꼿꼿하고 따뜻한 '의지와 의리'로 후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있다. 지난 20여년 간 말초신경이 썩는 '혈전폐색증'이란 난치병을 앓았고, 지금도 날마다 한 웅큼의 치료제를 복용하지만 "만화를 그리다가 죽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행복한 일 아니냐"며 후배들의 정진을 독려하고 있다.
<끝·그 동안 애독해주셔셔 감사합니다>끝·그>
/손상익·한국만화문화연구원장(samson1264@hotmail.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