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한 대로 돈을 내는 일반식당에 비해 먹는 양에 상관없이 일정액을 지불하는 뷔페식당의 운영방침은 다르기 마련이다. 일반식당에서는 손님들이 비싼 음식을 많이 주문하도록 고급메뉴에 정성을 쏟겠지만, 손님들이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이 달갑지 않은 뷔페식당에서는 일정 비용을 넘는 음식은 준비하지 않고 음식의 맛도 일정 수준만 유지할 것이다. 만약 외식비 상승으로 인한 가계비 지출이 너무 커져, 정부에서 일률적으로 식비 지불을 뷔페식으로 바꾼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이와 비슷한 논란이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같은 질병의 입원환자에 대해서는 일정액만을 건강보험에서 지급하는 포괄수가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맹장염 수술의 경우 입원일수나 투여 약물의 종류에 관계없이 100만원을 일률적으로 지급한다는 것이다.
이 제도의 도입 목적은 물론 건강보험의 재정보호를 위해서다. 현행 제도는 이루어진 진료에 대해 원칙적으로 모두 보험료를 지급하기에 진료량은 늘어나고 총 진료비가 증가하게 된다. 반면 일정액 범위 내에서 진료를 수행하는 포괄수가제에서는 병원 스스로의 진료비 억제를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그 동안 이 제도를 부분적으로 도입해 왔지만 전면실시를 앞두고 막상 의료계의 반발에 부딪치고 있다. 진료권을 침해하고 재정적자의 책임을 병원 측으로 전가하는 시도로서 강제 시행할 경우 또 다른 의료대란을 예고하고 있다.
분명한 점은 현행 수가제도가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서비스를 제공할수록 수입이 증가하는데다, 저수가로 묶여있기 때문에 진료수입 보전을 위해 불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여지가 많다. 실제로 많은 선진국에서 수가제도를 바꾸어 포괄수가제와 같은 다른 지급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포괄수가제 도입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먼저 진료의 경제성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의료서비스의 질적 수준이 떨어질 가능성이 많다. 병원의료의 질을 모니터할 수 있는 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섣부른 시행은 자칫 의료서비스 수준의 전반적 저하로 직결될 수 있다.
또 현 의료수가의 수준으로는 적정한 의료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 일반국민의 기대는 늘어가는데 의료비를 일정수준에 묶어 논다면 결과적으로 의료에 대한 불만만 높아질 것이라는 의료계의 주장에도 공감할 면이 있다.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수가제도의 개편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원활한 시행을 위해서는 예상되는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 정부는 수가제도의 개편이라는 기조를 유지하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의료계와 충분히 의견을 나누어야 한다. 의료계도 보다 대국적인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수가제도의 개편이라는 과제를 얼마나 무리 없이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인가. 보건정책은 또 하나의 시험대에 서 있다.
안 형 식 고려대의대교수 보건정책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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