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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라이프 / 부천 중앙공원 "그림책 버스 뚜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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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라이프 / 부천 중앙공원 "그림책 버스 뚜뚜"

입력
2003.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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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신기한 버스다."아빠랑 공원에 산책 나온 영선(6·여)이가 갖가지 캐릭터가 그려진 빨간 버스를 보더니 쪼뼛쪼뼛 차 계단을 올랐다. 아이의 감탄이 한번 더 터졌다. "아빠! 의자가 없어. 책 버스야." 아이 말처럼 노란 장판이 깔린 버스는 좌석대신 양편에 화분이 놓인 책장이 늘어서 있고 책장 가득 그림책이 꽂혀 있다.

호기심에 끌려 버스에 오른 아이들이 책꽂이에서 빼낸 그림책을 요리조리 살펴보던 것도 잠시, 꼬마들은 도란도란 앉아 선생님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암소 로지의 좌충우돌 살빼기 작전'에 눈을 반짝 뜨고 귀를 쫑긋 세웠다.

가락국수나 어묵을 파는 버스를 심심찮게 봐온 어른들도 음식 메뉴 대신 '도서관 타고 그림책 여행'이라고 단장한 낯선 버스를 보자 "참 예쁘다. 도서관이래"라며 한마디씩 했다. 기념 촬영하러 나선 예비 부부는 턱시도에,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버스 앞에서 '찰칵' 자세를 취했다.

오랜만에 맑게 갠 지난달 21일 경기 부천시 원미구 중앙공원엔 못 보던 버스가 출현해 휴일 나들이 나선 주민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버스 정류장도 아닌 공원 한복판에 떡 하니 자리 잡은 것은 바로 '그림책버스 뚜뚜'.

버스도서관 만들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그림책 기획자 조준영(여)씨 등이 3년 만에 개관한 버스도서관 1호다. 버스도서관 만들기는 폐차된 버스를 재활용해 공원이나 마을에 세워 아이의 삶을 가꾸는 어린이도서관으로 만들자는 운동이다.

그림책버스 뚜뚜 조준영 대표와 그림책 작가들은 이날 개관 기념으로 그림책 한마당을 열었다. 번역물이 아닌 국내 창작 그림책 포스터 전시회, 천 그림 그리기, 찰흙으로 그림책 캐릭터 만들기, 그림책 주인공 되기, 빛그림 상영, 그림책 읽어주기 등 다양한 행사가 하루종일 아이들과 부모들을 즐겁게 했다.

매캐한 매연이나 뿡뿡 싸대는 좁디 좁은 버스가 어린이도서관이라니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도, 책 빌려주는 이동도서관과 다를 게 머냐고 되묻는 이도 있을 터. 조 대표는 "수십억씩 들여 웅장한 도서관을 지어도 겨우 근방 주민들만 이용할 수 있고 이동도서관 역시 도서 대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폐차버스는 쉽게 구할 수 있어 조금만 개조하면 값도 저렴해 붙박이 도서관으로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종류의 도서 중 그림책을 택한 것은 아이들이 금방 쉽게 읽을 수 있고 어른들도 재미있어 한다는 장점 때문. 그림책 작가 오치근(34)씨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 깨알 같이 인쇄된 책을 보더라도 이해가 빠르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마을과 공원에 들어선 버스도서관은 도서관이 턱없이 부족한 국내 현실에서 대안도서관 문화를 꽃피우고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일굴 수 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사서(司書) 자원봉사를 하고 휴일엔 찰흙 공작, 그림 놀이 등 작은 행사를 열면 무미건조한 도심에 정다운 마을문화, 공원문화를 가꿀 수 있다는 것.

버스도서관 아이디어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 대표가 네살배기 아이와 동네 꼬마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집에서 만든 빛그림 슬라이드 극장이 입소문을 타면서 어머니들도 그림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때 동네 주부들과 만든 게 '가정도서관'이다.

이사 다닐 때마다 가정도서관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기자 움직이는 도서관을 생각해냈다. 내친 김에 3년 전 2,000여 만원을 들여 버스를 사 그림책 500여권을 채운 뒤 1종 대형면허까지 땄다. 하지만 혼자 하는 일이라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가끔 도서 행사장에 참여하는 시험운행에 그쳤다.

그래서 이번에 뜻을 함께 하는 그림책작가 등과 모여 그림책을 1,500여권으로 늘려 버스도서관으로 정식 개관하고 본격적인 버스도서관 만들기 운동에 나서게 됐다. 뚜뚜는 부천을 시작으로 파주(10월) 등 경기 일원에 며칠씩 머물며 관심 있는 지자체에 버스도서관 만들기 운동을 알리고 노하우도 전수할 예정이다.

하지만 앞으로 만들 버스도서관은 모두 폐차 운명에 놓인 버스로 제작할 계획이다. 마을마다 고물이 된 버스가 작은 책세상으로 거듭나 2호차 '빵빵', 3호차 '붕붕'이가 될 날이 기대된다. 뚜뚜 연락처 016-324-5724(cafe.daum.net/ddoddobus)

/부천=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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