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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경계도시인"의 늦은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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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경계도시인"의 늦은 귀향

입력
2003.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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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은 총보다 강하다. 이 말을 진실이기도 하지만, 순진하게 믿기엔 너무 가혹한 시대도 많다. 진실과 역설, 반(反)진실이 뒤죽박죽된 것이 역사의 화장 지운 얼굴이다. 영화는 총보다 펜에 가깝다. 영화 '경계도시'가 재독철학자 송두율 뮌스터대 교수의 막혔던 귀향 길을 열었다. '경계도시(境界都市)'는 과거 베를린의 별명이다. 동서를 냉전으로 갈라놓는 도시라는 의미다.홍형숙 감독의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다. 늦봄통일상을 수상하기 위한 송 교수의 귀국이 좌절되는 2000년 무렵을 1년 가까이 밀착 취재했다. 이 영화는 베를린 영화제 특별 프로그램으로 상영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상영작이었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한 편의 영화가 이념의 구각을 뚫고 인간의 온기를 불어 넣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달라져 가는 모습을 보게 한다.

현 정부의 '공안훈풍' 속에 이뤄진 송 교수의 자진 귀향은 고통스럽더라도 잘 한 일이다. 그는 북한도 여러 차례 방문했으나, 남한에서도 여러 권의 저서를 펴냈다. 그가 민족통일에 기여하려면, '친북인사'로 생애를 마치지 않고 남한과의 관계도 정상화해야 한다. 며칠간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그는 국가정보원을 나서면서 "이 관문을 통과하기가 너무 힘들어…"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비인간적 삶이 비일비재한 분단국가에서 그가 당면한 쓰라림만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나약한 감상에 젖을 일이 아니라, 그가 지식인으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고통스런 관문을 통과해야 그의 발언은 현실성을 갖는다.

조사과정에서 친북 행위가 확인된 그는 "독일국적을 갖고 있지만 앞으로는 한국 실정법도 염두에 두고 살겠다" 고 말했다고 한다. 이 분명한 반성의지를 우리가 관대하게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귀국과 조사라는 통과의례를 통해, 그의 행동은 좀더 무게와 적절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 혹은 통일에 관해 좀더 객관적인 발언을 할 자격과 위상을 얻게 되는 의식이다.

국가정보원도 해묵은 숙제를 푼 셈이다. 오랜 조사로 많은 내용이 밝혀진 지금 처벌은 급한 일이 아니다. 그가 독일 국적이라는 점을 감안치 않더라도, 국제사회를 고려할 때 실익도 적을 것이다.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의 이름을 빌리긴 했지만 국가승인 아래 초청해 놓고, 37년 만에 귀향하는 그를 체포한다면 그것은 비인도적 처사다. 공명정대해 보이지도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를 '친남인사'로, 혹은 최소한 중립적·객관적 인사로 만들 적극적 방안이다.

우리 정부는 과거 냉전시대에 많은 동포 지식인과 저명인을 반정부 인사로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대표적 인물이 세계적 명성을 지녔던 재독 작곡가 윤이상과, '문자추상'으로 파리 화단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했던 이응노다. 이들은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으로 귀국하여 옥고를 치렀다.

두 사람 모두 끝내 고국과 화해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지금 통영에서는 윤이상을 기리는 '통영현대음악제'가 성대하게 열리고 있고, 서울에서는 '이응노 미술관'이 그의 예술적 업적을 기념하고 있다. 송 교수는 지난해 한 논문에서 윤이상과 이응노를 민족예술의 전형으로 꼽은 바 있다. 두 사람의 음악과 미술은 독자적이고 보편적인 미학을 지녔기 때문에 민족예술로서 세계 속에 합당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내용보다도 동병상련 처지의 안타까움이 진하게 느껴진다.

영화 '경계도시' 가 연결해 놓은 화해의 다리가 끊기지 않았으면 한다. 서울이 '경계도시' 라는 구시대적 불명예를 물려받아서도 안 된다. 당국이 송 교수를 관대하게 받아들임으로써 냉전체제의 후유증에서 멀리 벗어나기 바란다.

박 래 부 논설위원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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