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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1988년과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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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1988년과 2004년

입력
2003.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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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권 시절인 1989년, 국회는 역사적인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는 87년 민주화 이후 민주화운동의 지도자였던 양김이 분열해 각각 당을 만들고 유신세력인 김종필 자민련 총재도 어부지리로 정계에 복귀해 '1노3김'의 4당체제와 여소야대가 이루어진 상황이었다. 이 국회에서 3김의 야당들이 연대해 노동법 개혁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 법안은 전두환일당이 80년 봄 광주학살 후 만든 국보위라는 초헌법적 불법기구에서 제정한 반민주적 노동법을 개정하려 한 것인데, 결국 노태우의 거부권 행사로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 법은 여소야대의 힘을 보여줬고 놀란 노태우 정권은 3당통합을 추진하게 된다.이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와 유사한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민주당의 분열에 의해 신4당체제가 출범한 가운데 잔류 민주당까지 야당에 가세한 여소야대에 의해 윤성식 감사원장 임명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국정감사에서도 한나라당이 민주당이 반대한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증언채택을 포기하는 대신 민주당이 한나라당이 요구한 노무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와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의 증인채택을 수용하는 등 '야당공조'가 나타나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노무현 정부에 더욱 더 어려운 험로를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하듯이 위기는 기회일 수 있다. 문제는 노무현 정부와 '정신적 여당'을 자임하고 있는 통합신당이 앞으로 얼마나 올바른 정치와 개혁을 펴나감으로써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느냐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와 통합신당이 올바른 정치와 개혁노선을 펴나갈 경우 감사원장 임명안 부결과 같은 야당의 공세는 국민들에게 개혁 발목잡기로 보일 것이고, 다음 총선에서 노 대통령과 통합신당이 주장해온 정치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직까지는 그런 것 같지 않다. 낮은 지지도가 보여주듯이 노 대통령은 집권 후 특유의 원칙의 정치를 통해 국민들을 감동시키는데 실패했다.

통합신당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을 짜증나게 했던 내분은 민주당 잔류파의 탓이라고 좋게 봐주더라도, 통합신당으로 갈 전국구 의원들이 국회의원 자리를 잃는 것이 무서워 민주당에 남아 있으면서 국민들이 통합신당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몇 년도 아니고 6개월 밖에 안 남은 국회의원 뱃지에 연연하고, 국회의원 수에서 민주당을 눌러 내년 총선에서 기호 2번을 차지하는 것에 연연하면서, 무슨 정치개혁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앞으로 노 대통령과 통합신당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내년 총선이 1988년의 재판이 될 것인지, 아니면 4당체제라는 형식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1988년과는 질적으로 다른 선거가 될 것인지가 결정된다. 노 대통령과 통합신당이 국민을 감동시키지 못한다면, 다음 총선은 기껏해야 민주화세력이 양김과 함께 호남과 부산, 경남으로 나뉘어져 지역당간의 선거가 되어버린 1988년과 마찬가지로 4개 지역당의 대결구조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즉 잘해야, 기존의 충청 자민련, 호남 민주당, 영남 한나라당의 구조에서 통합신당이 노 대통령의 연고 덕으로 한나라당의 영남에서 부산·경남을 빼앗아와 '신4개 지역당체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통합신당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경우, 내년 선거는 4당 대결이라는 표면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88년과 달리 4개 지역당의 대결이 아니라 낡은 3개 지역당과 새로운 전국적 개혁정당간 대결의 모습을 띨 수 있을 것이다. 내년 선거가 1988년의 재판이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선거가 될 것인가 하는, 1988년과 2004년의 유사점과 차이점, 그것이 한국정치가 당면한 핵심 화두이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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