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님. 방금 큰외숙부와 통화를 하고 나니 문득 할머니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하늘 나라에서 편히 계시지요?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외할머님 댁을 찾아가면 궁궐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었답니다. 커다란 기와집 대문을 열면 깨끗하게 정리된 안채를 중심으로 행랑채, 사랑채, 서가가 늘어서 있었지요. 저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책가방을 집에 내팽개치고 부리나케 할머님 댁을 찾았지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외삼촌들과 과수원에 들어가 수박과 복숭아를 따다 먹었지요. 외할아버지가 과수원 원두막에 누워 졸고 계시면 몰래 들어가 큼지막한 수박 한 덩이를 따다가 시원한 개울물에 넣어 둡니다. 개울에서 개구리를 잡으며 신나게 놀다가 수박을 꺼내 바위에 탁 깨뜨려 먹는 맛이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는 저희들의 수박서리를 알고서도 모른 척 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외삼촌과 제가 환갑이 넘었답니다. 할머니, 알고 계세요? 할머니가 저보다 외삼촌을 편애하는 것 같아 서운했다는 것을…. 한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이었지요. 외삼촌과 저는 출출해진 배를 만지며 외가에 들어섰지요. 외가에는 내가 좋아하는 곶감, 부침개, 사과가 항상 넘쳐 났지요. "할머니, 배 고파. 먹을 것 좀 주세요." "어유 귀여운 내 새끼들, 조금만 기다려라."
할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갔다가 양 손에 누룽지를 쥐고 나오셨지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한 개는 큼지막하고 다른 한 개는 작았습니다. 나는 큼지막한 누룽지가 내게 오기를 은근히 기대했지요.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큰 것은 외삼촌의 손에 쥐어지더군요.
얼마나 서운했던지요. 할머니는 평소 내가 공부를 잘하고 똑똑하다고 칭찬해주셨지만 나는 "그래. 내가 덜 예쁘단 말이지?"하고 투정했지요. 할머니는 아마도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을 겁니다. 제가 어린 마음에 괜히 샘이 나서 그런 생각을 했지요.
할머니, 사람의 한 평생이라는 게 알고 보니 짧군요. 그렇게 잘 생기고 정정하던 큰외숙부가 이제는 80이 넘었답니다. 임종의 순간에 가장 떠오르는 단어가 일장춘몽(一場春夢)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외할머님의 정겨운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다음에 찾아 뵈면 외삼촌과 나에게 똑같이 큼지막한 누룽지를 주실거지요?
/신중균·인천 남구 관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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