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마라톤 경기는 지구력 싸움이 아니라 속도전의 양상을 띄고 있다.28일 끝난 베를린마라톤대회에서 케냐의 폴 터갓이 세운 2시간4분55초는 100m를 평균 17초대로 주파하는 속도전의 정점에서 나온 기록이자 동물적인 근육질과 과학적인 훈련방법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100m를 17초대로 2시간 이상 달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평균 달리기 기록과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문화관광부가 발간하는 청소년백서에 따르면 17세 기준 남자고등학생의 50m 평균기록은 8초대. '2시간 4분 55초'는 웬만한 고등학생이 전력질주로 100m를 줄곧 달려야 어깨를 견줄 정도로 힘든 기록이다.
터갓은 100m를 17초76으로 질주하는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42.195㎞를 완주, 1999년 할리드 하누치(미국)가 시카고 마라톤에서 당시까지 인간 한계기록으로 여겨지던 2시간 5분대벽을 허문지 불과 4년만에 4분벽을 넘어선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대회의 페이스 메이커로 나선 케냐의 세미 코리르도 2시간 4분벽을 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대기록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날씨와 코스, 당일 선수의 컨디션, 그리고 심장이 멎을 듯한 고통을 참아내는 인내력이 뒷받침 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이들은 동물에 가까운 질주 능력인 '스피드'를 확실히 갖추고 있고, 이것은 현대마라톤의 키워드가 '스피드'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마라톤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마라톤은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이봉주가 세운 2시간7분20초의 기록이 깨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특히 이봉주 선수가 2003년 시즌에 보여준 런던 마라톤7위 파리 세계선수권대회 11위라는 성적은 스피드에서 역부족임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세계 마라토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기법 도입은 물론 무엇보다 스피드 훈련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선수육성에서도 트랙 5,000m, 10,000m등 중장거리 부문에서 착실히 훈련을 쌓고 난 후 마라톤에 입문할 수 있는 풍토조성이 시급하다.
이와 함께 마라톤 선수들이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 풍부한 레이스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육상연맹 및 정부의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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