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행정부처는 29일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당 탈당으로 당정협의 체제가 없어지게 되자 한마디로 "이젠 기댈 언덕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산적한 경제 현안과 주요 민생법안의 처리를 앞둔 경제부처는 큰 혼란에 휩싸였다. 당장 국회에 계류 중인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나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등이 표류할 위기에 처했다.재정경제부 기획관리실의 당정협의 담당자는 "그동안 주요 현안이 있을 때마다 여당과 먼저 협의해 이해를 구한 뒤 국회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며 "아무래도 여당이 상임위 등에서 정부 입장을 옹호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제 4당을 모두 맨투맨식으로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국회관계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균형재정을 유지하기 위해 초긴축으로 짜여진 내년 예산안 통과도 불투명하다. 한나라당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줄이고 복지예산을 늘리는 것에 반대하고 있고, 민주당도 경기 회복을 위한 과감한 재정지출 확대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30일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할 예정인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9월중 민주당과 두 차례나 당정협의를 갖고 예산안 편성의 기본방향에 대해 조율작업을 마쳤으나, 정부안을 밀어줄 여당이 사라져 물거품이 돼버렸다"며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투표처럼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힘을 합치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야당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공격을 하더라도 지금까지는 여당이 막아줬고 종국적으로는 여야간의 싸움으로 끝나 우리의 부담을 더는 효과가 있었다"며 "앞으로는 국회의 공격에 정부가 제지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여당이 없는 상황에서 모든 당을 접촉해야 하는 것이 엄청난 부담"이라며 "이제는 정부측에 손을 들어주는 의원이 적어지기 때문에 버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방부 관계자도 "국방과 안보는 여야가 따로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여당은 물론 야당과도 신중히 협의를 해 왔다"며 "하지만 심층논의를 할 수 있는 채널이 없어져 4당에 대한 각개전투가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조만간 국무조정실에서 대통령 탈당에 따른 지침이 내려올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 말에 당적을 포기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또 법무부 관계자는 "민주당 전문위원으로 파견된 법무부 직원이 없는데다가 법무부 내규 등에 당정회의 등에 관한 규정이 없다"며 "현재 개혁입법 추진작업 등 정치권과의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적지 않은데 차질이 불가피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조재우기자 josus62@hk.co.kr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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