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접근하지 마라. 더 이상 접근하면 발포하겠다." 김무생(60·진봉역)의 살기 어린 말에 주현(60·중달역)도 지지 않고 맞받아친다. "총 치아라. 오늘은 우리 엄마 제삿날이라 참는다만 내일부터 내 눈에 띄었다간 요절낼 테니 조심하는 게 좋을 끼다. 알겠나." 각각 엽총과 몽둥이를 들고 대치하고 있으니 살기라도 풍겨 나야 하겠지만 오히려 웃음기가 넘친다. 이들이 맞서고 있는 코 앞에서 타조 열 두 마리가 고개를 내밀고 싸움을 구경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군 독정리 타조 농장. '고독이 몸부림칠 때'라는 난투극과 생뚱맞은 타조의 표정이 묘하게 어울린다.노인네의 애욕과 난투극을 다룬 '고독이 몸부림칠 때' 촬영 현장은 초가을 햇살만큼 뜨거웠다. 타조농장으로 집안을 일으켜 세워보려는 중달과, 집 앞의 타조농장이 싫어 총으로 타조를 내쫓는 진봉은 앞으로는 선우용녀(58·송인주역)를 두고도 다툴 것이다. 김무생은 "온몸이 만신창이"라며 멍든 팔을 보여주었다. 사흘 전 진흙바닥에서 주현과 난투극 장면을 촬영했다.
곧 이어 양택조(64)가 싸움을 말리려고 헐레벌떡 뛰어오는 장면. 김무생은 "감정이 안 좋아. 다시 뛰어"라며 농을 건네고 양택조는 이에 질세라 "난투극 장면 다시 찍어야지"라고 응수한다.
송재호(61) 박영규(49) 등 중년배우를 대거 주연으로 내세운 영화는 여러 모로 독특하다.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한 신인 감독 이수인(41)은 '대머리 여가수' 등 부조리 연극을 주로 연출해 온 대학로 출신이다. "연극은 무대 위에 올리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하지만 영화는 두고두고 남으니 조금 두렵다. 좁은 연극무대에서 벗어나 돌아다니며 찍으니 상쾌하긴 하지만."
어떻게 노인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과감한 발상을 했을까. 그는 "세대 차이를 절대화하는데 인간으로서 동질성이 더 크지 않느냐"고 했다. "나이 들면 점잖게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나이 들어도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다. 욕구는 그대로다." 타조의 등장도 이에 못지않다. 그는 동호대교 위에서 트럭에서 떨어진 타조 때문에 교통이 마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고 했다. 감독은 "12세 이상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모든 관객이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찍겠다고 했다.
스무살 위의 배우들을 꼬박꼬박 선생님으로 부르며 연기를 지시하는 모습은 노련해 보였다. "연극을 많이 해선지 감독이 감정 연기를 잘 이끌어낸다"고 주현은 감독을 추켜세웠다. 그래도 감독은 영화가 첫 경험이어서 "시원하게 'O.K'를 불렀는데 모니터로 보면 장면이 잘 안 이어질 때 당혹스럽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경남 남해에서 거의 모든 촬영을 마치고 이제 화성에서 나머지를 찍고 있는 '고독…'은 내년 1월에 개봉된다.
/글·사진 화성=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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