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는 재앙이 될 것인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고령 사회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농촌 지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등 선진국보다 최고 5배 이상 빠른 고령화 속도를 보이고 있지만 대책은 '영아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고령사회에 대비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재앙에 가까운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
경남 의령군 가례면 갑을마을. 논, 밭 3,000여평을 경작하는 이 마을의 인구는 53명. 창원 정(丁)씨 집성촌으로 1960년대 한때 450명이 넘었던 이 마을은 어린이나 청·장년은 없고 50대인 6명을 제외하곤 모두 65세 이상으로 노인인구가 90%에 육박한다.
독거 노인이 절반 이상이고 뇌졸중, 관절염 등으로 거동을 할 수 없는 노인도 5∼6명이나 된다. 거동이 불편한 70대 노인이 92세 된 어머니를 돌보고 있는 실정이다. 매주 한 차례 가량 1.5㎞ 떨어진 보건지소에서 직원이 나와 당뇨, 고혈압 등을 체크하고 가벼운 감기 처방도 하지만 큰 병이라도 나면 '119'의 도움으로 마산 등 큰 도시로 가야 한다.
마을 대표 정종태(67)씨는 "한때 450명 가까운 주민이 어울려 살았지만 이젠 노인들만 남았다"며 "우리끼리 자족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고 말했다.
갑을마을은 고령화에 병든 농촌의 실상을 보여준다. 올 상반기 65세 이상 전체 노인인구는 모두 370여만명으로, 전체 인구(4,700만명)의 8.3%. 2000년 유엔인구유형기준으로 고령화 사회(노인인구 7%)에 들어선지 불과 2년여만에 노인인구가 1% 이상 증가했고 15년뒤인 2019년에는 고령사회(노인인구 14%)로 진입할 전망이다.
특히 농촌은 곳곳에서 초고령사회(20%)로 접어들어 심각한 인구불균형과 노인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2000년 경남 의령·남해군 두 곳뿐이던 초고령 지역은 불과 2년 만에 11배나 늘어 23곳에 달한다. 고령사회 지역도 무려 73곳으로, 전국 89개 군 대부분이 올해말이면 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영아 수준의 고령사회 대책
문제는 노령화 속도에 비해 노후복지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나 제도 마련 등의 속도가 지나치게 느리다는 점이다.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이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까지 45∼115년이 걸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인프라와 제도를 구축했다. 반면 고령사회까지 19년 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분석되는 한국 사회는 초고속 고령화에 따른 경제·사회적 부작용과 노인문제가 폭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강남대 사회복지학부 고양곤교수는 "경제력과 노인복지 인프라가 잘 구축된 일본도 노인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고령화 속도가 훨씬 빠른 우리 사회가 10년 뒤 닥칠 여러 문제는 상상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지역에 따라 노인인구는 20%를 넘고 있지만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노인문제 전담 부서를 둔 곳은 한 곳도 없고, 달랑 노인복지 담당 공무원 한 명만 둔 곳이 태반이라는 사실에서 노인정책의 현주소를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농촌 지역은 도시 지역의 노인복지시설과 의료시설에 비해 절대적인 불평등의 상태에 있고 농촌의 독거노인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대책은 미미하다. 가장 높은 노령인구비를 보이는 경남 의령군은 거동을 못하는 독거노인에게 간병비를 지급하고 있지만 상반기에 예산이 거덜 났다.
우리나라에서 장기요양서비스를 받는 노인은 고작 1%에 불과해 선진국(15∼30%)과는 비교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올해 노인복지 예산은 4,078억원 정도로 전체 예산의 고작 0.37%. 그나마 경로연금(약 2,145억여원) 등 고정경비를 제외하면 인프라 투자비는 고작 1,900억여원에 불과하다. 91년 총리실 산하 노인복지대책자문위원회가 설치됐지만 노인정책은 그야말로 '현상유지''땜질식 처방'에 지나지 않았다. 10월에 발족할 청와대 직속 고령화대책 기획단이 총체적 대책 마련의 첫 삽을 뜨는 셈이다.
보건사회연구원 정경희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고령화는 단기간 내 나타나기 때문에 지금 1, 2년은 선진국의 10년과 맞먹는다"며 "고령사회에 대비한 중장기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정부, 고령자 고용 적극 지원에도 취업 여전히 "바늘구멍"
정부는 다각적인 중장년층 고용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고령자들의 일자리 구하기는 쉽지 않다. 55세 이상 고령자를 고용하는 사업주에게 고령근로자의 임금을 보조하는 고용촉진장려금이 대표적이다. 올해 422억9,900만원의 예산이 확보돼 상반기에만 3만3,737개 업체 14만5,487명에게 216억9,300만원이 지원됐다.
상시근로자 수의 일정 비율 이상을 고령자로 채용한 경우 기준(부동산임대업·운수업 18%, 제조업 4%, 기타 10%) 초과 1인당 15만원씩 분기마다 지원한다. 또 고령자를 신규 채용하면 1인당 월 28만원을 6개월간 지급하는 고령자신규고용장려금의 대상이 올 하반기부터는 55세 이상에서 45세 이상으로 확대되고, 정년퇴직자를 재고용하면 6개월간 월 30만원씩 지원하는 제도도 신설됐다.
고용촉진장려금과 별도로 정부는 올해 150억원의 예산을 책정, 직업훈련을 받은 40세 이상 중장년 실업자를 채용하는 500인 이하 제조업체에 1년간 매달 20만∼60만원씩 주는 중장년훈련수료자채용장려금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장려금의 경우 상반기 지원 실적이 9개 사업장 9명에 그치는 등 실제 고용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상시근로자의 3% 이상을 고령자로 고용토록 하고 있으나, 지난해말 현재 대상 기업 1,502곳 중 고령자 기준고용률을 지키지 못한 기업이 63.4%(952곳)에 달하고 있다. 고령자를 필요로 하는 일자리도 찾기 어렵다. 고용안정센터의 구인-구직현황을 보면, 올 상반기동안 50대의 구직 요청은 5만4,598명인 반면 구인 요청은 6,063명뿐이고, 60세 이상의 경우 구직 요청은 1만6,482명이나 구인 요청은 983명에 불과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고령 인구가 늘고 있으나 기업들은 임금 부담이 큰 고령 근로자를 기피, 고령자 인력 수요는 감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정부도 현실적 대안으로 직장에서 일정 연령을 정점으로 생산성에 따라 임금을 줄이는 대신 정년 또는 장기근무를 보장하는 임금피크제의 보급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임금피크제의 모델로 호봉승급상한제 또는 일정연령에 도달하면 임금인상을 제한하는 방안 등을 고려중이나 노동계는 임금 및 정년 감축을 우려해 반대하고 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2026년이 되면....
65세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 이상이 되는 2026년 한국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각 연구기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전체 인구는 5,061만명,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1,011만명으로 늘어난다. 2000년 현재 전체 인구의 3,200만명인 15∼64세의 생산가능인구는 3,000만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80세이상 노인인구도 지금보다 5배 가량 늘어난 221만여명. 이때는 1980년 이후 저출산 세대가 근로세대가 되면서 세대간 부양비가 급격히 악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00년 생산가능인구 10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반면 이때에는 생산인구 10명이 노인 3명을 부양하게 돼 노인부양부담이 3배 정도높아진다. 부양비용이 늘어난 만큼 고용비용도 늘어나게 되면서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는 이상 경제성장이 크게 떨어진다.
노인인구의 급증으로 노인진료비도 현재 전체 진료비의 19% 수준에서 이때는 30%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현재 평균소득의 60% 수준을 유지하는 국민연금은 고령인구의 폭발적 증가에 따른 재정압박으로 연금수령액을 줄이고 덩달아 생산인구의 연금보험료율을 높일 수 밖에 없다.
노인인구 증가로 노후보장 욕구는 커지는 반면 이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 경제·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는 불안정한 사회가 될 것이 확실하다.
/정진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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