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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세번째 무대선 박정자씨/"딸과 엄마의 "눈물" 모두 흘려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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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세번째 무대선 박정자씨/"딸과 엄마의 "눈물" 모두 흘려봤죠"

입력
2003.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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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가난이라는 굴레에서 만신창이가 된 여자. 쉰 살이 되어서야 처음 바다에서 해수욕 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 여자. 하지만 여자는 그토록 사랑하던 가족들의 외면 속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게 되고 뒤늦게 딸은 회한의 눈물 흘린다.이 감상적으로 보이는 스토리가 연극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의 큰 줄거리다. 그러나 이 상투적인 이야기가 1991년 초연된 이래 수많은 '엄마'와 그 엄마를 기억하는 자식들을 울렸다.

그 울음의 한가운데에 화장실 문도 닫지 않고 볼일을 보면서 "결혼은 언제 하니? 애는 또 언제 낳고?" 하며 잔소리를 끌어붓는 엄마 박정자(62)가 있었다. 그는 초연 이후 98년, 이번까지 세번째 이 연극 무대에 섰다.

"이리 오세요, 여기가 딱 좋네." 대뜸 박정자는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의 무대 위 테이블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62년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2년 재학 시절 연극 '페드라'의 시녀 역으로 데뷔한 이래 무대를 떠나본 적이 없는 그다웠다. 그렇게 무대를 사랑하는 그는 "무대에만 서면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오직 '내 모든 걸 관객에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만 머리 속에 가득해진다"고 했다. 주역이든 단역이든 무대에 서기만 하면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 잡았던 건 바로 그 열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는 10년 넘게 엄마를 연기했다. 하지만 아직도 그는 속으로 "내가 진짜 엄마로서 모든 걸 다 주는 사람이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고 했다. "첫 공연 때 우리 어머니가 저기 객석 한 가운데서 내 연기를 보셨어요. 눈이 마주치자 얼마나 눈물이 쏟아지던지. 여기 무대에 서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날 바라보고 계신 것 같아. 그런데 신기하지, 내 딸도 공연을 보는 내내 펑펑 울더라고." 나이 60을 넘긴 박정자는 그렇게 '딸'인 동시에 '엄마'였다.

"딱 50살에 이 연극을 했죠. 그땐 오른쪽 어깨가 아팠어요, 오십견이었지. 그런데 이번엔 왼쪽 어깨 차롄가 봐, 너무 아파." 그는 작품을 새로 시작할 때마다 '신열을 앓듯이' 몸이 아프다고 했다. 박정자도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늙어가고 있다. "그래도 연극 '19 그리고 80'을 실제 내 나이가 80이 될 때까지 무대에 올리겠다는 약속은 지킬 거야. 관객도 늙고 나도 늙어가고, 서로 늙어가는 모습을 보며 웃을 수 있다면 그건 축복이지." 80세 여자 모드와 19세 청년 헤럴드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19 그리고 80'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그는 "요즘 들어 '연민'이란 단어가 부쩍 좋아진다"고 했다. 사랑은 짧고 편협하지만 연민은 잔잔하게 오래도록 계속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박정자가 연기하는 엄마를 본다. 그리고 그를 통해 세상 모든 엄마들의 가슴속에 숨겨진 바다를 본다. 그 바다는 따뜻함과 평화로움 그 자체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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