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시청률 50%를 넘나들며 '주먹' 신드롬을 몰고 온 SBS '야인시대'(극본 이환경, 연출 장형일)가 30일 124회로 막을 내린다. 마지막 회는 김두한(김영철)이 2002년 7월 29일 첫 방송의 프롤로그를 장식한 '국회 오물투척 사건'(1966년)으로 구속됐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 절을 찾아 속죄하고 돌아오던 길에 갑자기 쓰러져 숨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14개월간의 대장정은 화려했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1부는 최고 시청률(51.5%)을 올린 김두한과 하야시패의 장충단공원 결투 장면 등 박진감 넘치는 액션에 힘입어 평균 40%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광복 이후를 다룬 2부에 접어들어 인기가 한 풀 꺾였지만, 평균 25%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선전했다. 연기자만 504명, 보조출연자는 무려 4만여명이 동원됐고, 7억원을 들여 지은 1만평 규모의 부천 오픈 세트는 160만명의 관람객을 불러들였다.
톱스타 한 명 없이 출발해 수많은 스타를 배출한 것도 눈길을 끈다. 청년 김두한 역의 안재모는 '미스 캐스팅' 우려를 씻고 스타덤에 올랐고, 이원종(구마적) 박준규(쌍칼) 김영호(이정재) 조상구(시라소니) 최준용(임화수) 등 연기파 배우들도 모처럼 인기를 구가했다.
파생 상품도 인기를 끌었다. 게임빌이 드라마 내용과 등장인물을 그대로 옮긴 모바일 게임 '야인시대'를 선보여 짭짤한 수입을 올렸고, 김두한 자서전 '피로 물든 건국전야'가 40년만에 재출간되고 어린이 만화 10여종이 나오는 등 관련 서적도 쏟아졌다.
하지만 드라마로서는 불가피한 주인공의 미화를 넘어선 '역사 자체의 왜곡'은 두고두고 비난받을 만하다. 피 튀기는 액션 장면은 극의 재미를 위해 눈감아 준다 하더라도, 김두한의 주먹질을 항일투쟁으로 미화하고, 백색 테러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고, 제주 4·3항쟁의 배경을 왜곡하는 등 역사 비틀기는 "드라마는 픽션"이라는 제작진의 항변이 통하기 어려울 만큼 그 정도가 심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실존인물 유족들이나 4·3항쟁 관련 단체 등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그럼에도 고만고만한 사랑 타령에 신물이 난 시청자들은 선 굵은 드라마에 대해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SBS가 드라마 종영에 맞춰 낯 뜨거운 자화자찬 일색인 특집 프로그램 '야인시대 스페셜-최고의 순간들'을 29일 밤 11시5분부터 80분간이나 편성한 것은 뒷맛이 씁쓸하다. 시청률에 목을 매는 TV 제작진에게 공과를 차분히 따져보라고 주문하는 것은 아직 무리인 것 같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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