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9월29일 이탈리아군이 북아프리카의 오스만투르크제국령 트리폴리로 진격하면서 이탈리아-투르크 전쟁이 시작됐다. 주전장(主戰場)의 이름을 따 트리폴리 전쟁이라고도 부르는 이 전쟁은 20세기 초의 전형적인 제국주의 전쟁 가운데 하나였다. 제국의 건설을 꿈꾸던 신생 통일 국가 앞에서 늙은 제국은 무력했다. 이듬해 10월 열강의 조정으로 휴전이 성립됐을 때, 투르크는 트리폴리를 중심으로 한 북아프리카 영토의 상당 부분을 이탈리아에 할양해야 했다. 이탈리아-투르크 전쟁의 무대가 된 지중해 항구 도시 트리폴리는 현재 리비아의 수도다. 지중해에는 트리폴리라는 이름을 지닌 항구 도시가 하나 더 있으니, 레바논 북서부의 트리폴리가 그것이다.트리폴리 전쟁으로 투르크가 중국에 이은 또 하나의 '종이 호랑이'라는 것이 드러나자, 그 동안 숨죽이고 있던 발칸의 여러 나라와 민족들은 1912년과 그 이듬해 투르크의 분할을 꾀하며 두 차례 전쟁(발칸 전쟁)을 벌였다. 이 두 번의 전쟁으로 발칸 지역은 '유럽의 화약고'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이 지역을 둘러싼 크고 작은 나라들의 이해 대립은 제1차 세계대전의 한 원인이 되었다.
한 때 아시아 대륙의 서쪽과 중부·동부 유럽,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광활한 강역을 아우르고 있던 투르크, 곧 터키는 이제 소아시아라고도 불리는 아나톨리아 반도와 유럽 발칸 반도의 동쪽 끝머리만을 옹색하게 차지하고 있다. 터키는 몽골과 함께 제국의 영고성쇠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우연히 이 두 나라는 우리와 친연(親緣)이 있다. 지금은 알타이어족(語族)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인하는 비교언어학자들도 많지만, 핀란드 언어학자 구스타프 람스테트를 비롯한 알타이어학자들에 따르면 한국어는 몽고어, 터키어 등과 함께 알타이어족을 이룬다.
고종석/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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