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고향을 생각하게 하는 기간인 듯합니다. 수많은 이들이 고향으로 향하는 추석이 있어 그렇고, 눈물이 날 정도로 청명하고 푸른 하늘을 이고 익어가는 벼나 과일들이 훈훈하고 포근한 고향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겠지요.요즘 매스컴 한쪽에서는 실망하고 힘들어 혹은 더 큰 꿈을 좇아 이 땅을 떠나겠다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하고, 한쪽에서는 이념을 달리해 이국에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분들이 고향을 찾아온다고 합니다. 고향이란 혹은 조국이란 의미가 무엇일까요?
나무들은 어떨까요. 제가 편지를 쓰고 있는 광릉 숲에서 이미 계수나무, 자작나무 등은 노랗게 물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나무마다 가을을 맞이하는 혹은 겨울을 준비하는 시기와 모습이 다를까요. 한 장소에서도 나무마다 다르고 한 나무에서도 잎의 위치에 따라 다르지요. 한 나무의 가을이 가지 끝에서 시작되는 것은 그 곳이 왕성하고도 섬세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나무마다 다른 것은 왜일까요. 각기 개성이라고 여기기에는 뭔가 부족합니다. 얼마 전 눈의 고장인 북해도에서 만났던 계수나무의 고향을 떠올리며, 그리고 지난해 러시아의 동북쪽 끝인 캄차카에서 만났던, 그 보다 더 몇 해 전 백두산 초입에서 가슴을 서늘케 했던 순결한 자작나무 숲을 회상하며 그 나무들의 고향이 추운 북쪽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추운 곳에서는 겨울을 빨리 준비하는 일은 당연할 것입니다. 고향을 떠난 지 수십년이 넘고 더러는 2대, 3대를 거쳐 내려온 나무들이지만 일찍 가을을 맞이하는 본능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식물들이 고향만을 고집하며 변치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벼의 고향도 따지고 보면 동남아시아이니까요. 벼가 얼마나 환경에 맞게, 목적에 적합하게 발전(?)을 거듭했는지에 대해, 또 야생 벼가 어떤 종인지에 대해 논란이 많다가 최근에 벼의 DNA 염기서열을 완전히 밝히고서야 해답을 정확하게 찾아냈다는 뒷이야기도 들립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우리나라 꽃 무궁화도 사실 자생하고 있는 정확한 고향을 잘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무궁화를 나라의 상징으로 삼아 태극기 깃대봉에도 꽂고 국회의원 배지에도 그려넣습니다. 한 꽃의 수명이 하루뿐인 무궁화가 피고 지어 또 피어 이어지듯 우리나라가 무궁하길 기원하며 노래도 합니다.
고향을 떠나거나 다시 찾는 모든 이들도 벼처럼, 무궁화처럼 새로운 세상의 주인이 되면서도 고향 땅의 본질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면 너무 큰 욕심인가요. 오늘, 맑은 가을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광릉수목원 나무숲으로 산책을 떠나거들랑 먼저 물드는, 그리고 먼저 낙엽이 지는 추운 북쪽을 고향으로 가진 나무들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쓸쓸해 하거들랑 그 나무 아래 잠시 머물까 합니다. 앞의 두 나무 말고 잎깔나무가 떠오르네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더라도 그 나무들이 저를 부를 것 같습니다. 노란 혹은 붉은 잎을 가을바람에 팔랑이며 말입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 @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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