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에 이어 위성 방송이 자리를 잡으면서 프랑스에도 전문 채널 시대가 활짝 열렸다. 뉴스 스포츠 영화 등 인기 채널외에 주목할 만한 채널로 '파리 프리미에르(Paris Premiere)'를 꼽을 수 있다. 이 채널은 파리의 섬세한 문화 코드를 방송 언어로 풀어내며 1,200만명의 시청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올해로 방송 5년째인 문화 토크쇼 '앞면과 뒷면(Recto Verso)'이 대표적 프로그램. 토크쇼라고는 하지만, 패널이 쉴 새 없이 등장하고 방청객이 환호하는 토크쇼가 아니라 단 1명의 손님을 초대해 1시간 동안 그들의 내면 세계를 파고든다.
어둠이 깔린 몽마르트르 언덕, 오래된 영화관의 현관에 불이 켜지면 카메라는 빨려들 듯 극장 안으로 앵글을 옮긴다. 사방이 붉은 천으로 장식된 어두운 영화관의 객석 첫 줄에는 진행자 폴 아마르와 초대손님 단 두 명이 앉아있다. 전국 네트워크의 메인뉴스 앵커를 지낸 탁월한 인터뷰어 아마르는 매주 목요일 밤 10시30분, 배우 줄리엣 비노쉬, 배우 겸 감독 존 말코비치, 가수 파트리샤 카스,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부 장관, 들라노에 파리 시장,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 등 저명 인사들과 다큐멘터리 형식의 26분 짜리 필름을 보며 대화를 나눈다.
초대손님의 활동 세계와 가족, 친구, 동료들의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는 중간중간 멈춘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을 때, 부연 설명을 하고 싶을 때, 혹은 의문이 생길 때, 진행자와 초대손님이 각자의 리모콘의 정지 버튼을 누르기 때문이다. 화면이 정지되고 극장에 불이 들어오면, 때로는 날카로운 반발이, 때로는 흐뭇한 정담이 흘러나온다. 보여지는 삶이 아닌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들의 대담은 시청자들을 보다 내밀한 세계로 이끌어간다.
이처럼 '앞면과 뒷면'의 대담은 한 인간의 정신적 여로를 더듬는다. 신작 홍보나 정견 발표를 하는 것도 아니고, 시시콜콜 사생활을 꺼내 보이지도 않는다. 카메라가 빈 스크린과 두 관객을 두고 극장을 빠져나올 때, 시청자들은 17세기 고전을 열정적으로 읊조린 배우와 나달나달한 습작 노트를 꺼내보인 소설가를 조금 더 이해했다는 느낌을 가질 뿐이다.
그럼에도 전국 네트워크 프로그램이나 유료방송의 대형 스포츠 중계와는 시청률 경쟁이라는 말조차 어울리지 않는 이 소규모 프로그램은 프랑스 시청자들을 몰두하게 하는 특이한 토크쇼로 인정받고 있다.
/오소영·프랑스 그르노블3대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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