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레이더(Day Trader)'. 종목별로 하룻동안에 변동하는 주가 차익을 좇아 수익률 극대화를 노리는 증시의 단타 매매자를 일컫는다.주식 전업 투자자 이준수(李準秀·필명 새강자)씨. 최근 대우증권 실전투자대회에서 500만원의 종잣돈으로 3개월 만에 2억3,000여만원을 벌며 4,650%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한 그 역시 데이트레이더에 가까운 인물이다.
조직과정보, 장세를 움직일 수 있는 막대한 자금의 뒷받침도 없었다. 오직 타고난 감각과 근성, 노력과 집중력이 누구나 꿈꾸는 증시의 새로운 '대박 신화'로 그를 이끌었다.
하지만 눈이 서늘한 이 34세의 젊은 전업 투자자는 바로 그 '대박'을 꿈꾸는 주식 투자자들에게 "'대박'의 욕망이야말로 투자를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스타 탄생
그에게 4,650%라는 수익률은 결코 우연이나 행운은 아니다. 2000년부터 그야말로 생사를 걸고 동대문 인근 단칸방의 PC모니터 앞에서 씨름해왔다.
스스로 '이제는 더 이상 깨지지 않겠다'는 자신감을 확인한 뒤, 지난해 가을부터 열린 동양·한화·SK증권의 수익률 대회를 사실상 모두 석권했고, 그 저력을 바탕으로 마침내 이번 신화를 일구어낸 것이다.
스타 탄생이었다. 경이적인 수익률을 거둔 '투자왕'의 강연에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가 정작 강연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은 나락에 빠졌던 자신의 실패 사례를 들면서 주체할 수 없이 복받친 감정 때문에 흘러내린 굵은 눈물이었다.
무모한 도전
집안이 기울어 경북 봉화에서 초등학교만 마친 뒤, 곧바로 어머니와 단 둘이 상경해 동대문 인근 가방공장과 수족관, 슈퍼마켓을 전전하며 밥벌이에 나서야 했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청량리 청과물 시장에서 장사를 배웠다. 상인들이 돈을 모아서 이른바 '밭떼기'에 나서 수확기에 요술처럼 대박을 터뜨리는 것을 봤다. 이후 대구의 청과시장으로 '귀향'해 '밭떼기' 전문 브로커로 2년 여를 보낸 끝에 난생 처음으로 목돈 2억원을 모았다.
시장에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조금씩 주식을 했다. 그저 매일 보유종목 주가를 신문에서 확인해보는 수준의 투자자였다. 한 3,000만원 정도 손실을 봤다. 아까웠다.
그런데 외환 위기가 터졌고, 주가가 끝없이 추락했다. '지금 사두면 돈이 되겠다'는 판단이 본능적으로 꿈틀거렸다. 무턱대고 가진 돈 1억원을 들고 증권사 지점을 찾아가 모 증권주 1억원 어치를 사달라고 했다.
그러자 창구 직원은 "증권 투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주식을 분산 보유하고 뜨는 종목들을 찾아 다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단타에 주력할 테니 운용을 맡겨보라고 했다. 첫날 2%, 둘쨋날 4%의 이익을 거뒀다. 그러나 보름 뒤에는 20%의 손실이 발생했고, 한 달 후에는 손실이 40%로 늘었다. 투자원금이 6,000만원 밖에 남지않았다.
원금을 빨리 회수해야겠다는 생각에 남은 1억원을 더 넣었으나 그마저도 까먹었다. 마침내 선물에 발을 담궜다. 한 달도 안돼 원금은 1,000만원대로 더욱 졸아들었다.
나락에서의 나날들
이씨는 "이 때부터 눈이 뒤집혔다"고 말했다. 주변 상인과 친지들, 심지어는 사채까지 끌어모아 옵션에 손을 댔다. 모두 10억원 가까이 쏟아부었으나 결국 계좌에는 달랑 83만원만 남게 됐다.
자그마한 사업을 하면서 수 억원의 돈을 맡긴 매형이 급전 5,000만원이 필요하니 계좌에서 빼달라고 했다. "내일 장이 열리면 빼주겠다"고 말한 뒤, 다음날 새벽차를 타고 서울로 도망쳤다. 친지들은 그가 벌어놓은 돈을 빼돌렸다고 오해했다.
이후 이씨는 재기를 꿈꾸며 처음 장사를 배웠던 동대문 청과시장에서 1년간 막노동을 하며 다시 종잣돈 2,000만원을 모았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이번에도 그를 버렸다.
늦은 밤, '돈을 빼돌린 게 아니고, 다 잃어서 도망쳤다. 죄송하다'는 유서를 써놓고 술기운을 빌어 홍릉 근처 대로에서 달리는 차를 향해 뛰어 들었다. 그러나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고, 자동차 마저 뺑소니를 쳤다.
이제 다시 원점에서 스스로 부목을 대고 단칸방에 누워 한 달 여를 앓고 있는 동안 느닷없는 편안함이 깃들었다. "죽느니 툴툴 털고 다시 시작해보자"는 허허로운 심정이 들었다.
그 때부터 500개가 넘는 종목 파일을 만들고, 거래량과 재료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저평가 종목 가운데 거래량이 늘며 상승세가 시작되는 종목, 영업계약 등 재료가 떠오를 종목들을 찾고 거래했다. 마침 데이트레이딩이 증시의 유행처럼 번지는 상황이었다. 일이 술술 풀려갔다. 작년까지 그간에 빚진 돈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이씨는 "이제야 손익계산서는 7년 여 전 1억원을 쥐고 증권사를 찾았던 시점으로 돌아온 셈"이라고 말했다.
꿈.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온통 '돈과의 씨름'에 바치는 사내의 꿈에 대해 이씨는 "언젠가는 제주도에 별장 하나 짓고 한가롭게 살고 싶다"며 탈출을 시사했다. 그러나 잠시 후 "아니, 증시를 떠나지는 않을 것 같다"며 "그저 아내와 11월에 세상에 나올 아이와 함께 굴곡없이 사는 작은 소망을 키워나갈 것"이라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장인철기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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