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5%선)을 밑돌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국 경제가 단순한 경기순환상의 불황국면을 넘어 구조적인 저성장시대로 진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소비와 투자위축, 가계부채 누적, 노사불안 등이 성장잠재력을 잠식하는 가운데 저출산·인구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이대로 가다간 저성장 구조가 고착화, 성장모멘텀(동력)의 재점화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28일 금융계와 경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올해 사실상 40년만에 최악인 2%대 성장에 그치고 내년에도 기술적인 반등 수준인 4%대 성장에 머문다면 이는 한국경제의 성장구조에 큰 변화가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이 1970년대 초반에 8∼11%대의 고성장체제에서 2∼5%의 저성장구조로 바뀌었듯이 우리경제 역시 성장률 수준이 한계단 내려앉게 된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날 경제성장률을 올해 2.8%, 내년 4.5%로 전망하면서 "2004년이 한국경제에 있어서 5%대 성장궤도에 재진입하느냐와 2∼3%대 성장의 장기 침체 국면으로 추락하느냐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이와 함께 "노사 분규 심화, 소비와 투자의 부진, 제조업의 공동화가 지속될 경우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크게 훼손되며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불황 후 회복 과정에서 항상 큰 폭의 반등을 보이는 것이 과거 한국경제의 특징이었다"며 "그러나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경제회복의 탄력이 떨어진다면 이는 성장의 '큰 틀'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는 1971년 4.9%의 저성장을 겪은 후 다음해 12.3%로 반등하고 80년 마이너스 2.1% 성장 후 81년 6.5% 증가로 돌아섰으며 환란 당시인 98년 마이너스 6.7%에서 다음해 10.9% 성장으로 전환했다.
내수의 극심한 침체로 오로지 수출이 먹여 살리는 현재 경제의 구조 역시 문제다. 올해 2·4분기에 소비와 투자의 성장기여율은 각각 마이너스 44.9%와 23.9%에 그친 반면 수출(순수출 기준)의 기여율은 150.4%에 달했다. 수출이 소비가 갉아먹은 몫까지 채우는 현 구조로는 정상적인 성장이 불가능하며, 이 같은 불균형은 가계빚 증가와 신용불량자 급증 탓에 내년에도 개선되기 어렵기 때문에 장기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다.
모건스탠리의 앤디 시에 아시아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한국 경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고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며 "투자 급감과 노동생산성 하락으로 한국 제조업의 성장동력은 거의 소진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저출산·고령화의 덫도 머지않아 한국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재앙으로 전면 부상할 전망이다. 근본적인 성장 버팀목인 노동력을 감소시키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미 2000년에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7%를 넘은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최저수준 출산율(여성 1인당 1.17명)을 보이고 있으며, 고령인구 비율이 7%에서 20%로 증가하는 데 걸리는 기간도 프랑스(156년), 미국(86년), 일본(36년)에 비해 훨씬 짧은 26년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 전무는 "70년대 초 일본 경제성장률을 추락시킨 가장 큰 요인은 오일쇼크가 아닌 고령화 문제였다"며 "2005년쯤이면 우리나라도 70년대초 일본의 인구구조와 비슷해져 심각한 성장률 저하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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