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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도덕적 오만으론 난국 못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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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도덕적 오만으론 난국 못푼다

입력
2003.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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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정국이 급랭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청와대와 통합신당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정치행태를 구태정치라고 비난하면서 국정 발목잡기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야3당은 약간씩 상이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입법부의 정당한 활동을 행정부가 비난하는 것에 대해 다같이 못 마땅해 하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국회 고유의 권한을 행사했을 따름이라는 주장이다.이번 임명동의안 처리가 정치적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민주당의 분당으로 초래된 신4당체제 하에서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민주당이 야당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하면서 국회의석의 거의 모두를 야3당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대통령의 원만한 국정운영이 가능해질 수 있는가. 대통령도 이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비서관 회의에서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쉬운 답은 없다. 그리고 이것은 대통령제 권력구조에 내재하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청와대가 미국식의 대통령―의회관계를 거론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통령이 정당의 경계를 뛰어 넘어 사안별로 개별 의원들의 지지를 호소함으로써 국정운영에 필요한 의회의 과반수 지지를 확보하는 방안이다.

이와 같은 미국식 대통령―의회관계가 작동하려면 몇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정당 내 위계구조가 존재하지 않고 의원들이 각자의 개별적인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투표해야 한다. 예비선거와 같은 상향식 공천제가 이러한 당내 민주화의 발전에 기여한다. 둘째, 미국의 양대 정당간에 있는 이념적 격차 만큼이나 각 정당내부에도 그것이 존재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셋째,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입법, 행정, 사법부가 서로의 고유한 권한을 존중해야 한다. 따라서 대통령은 의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오랜 대통령제 권력구조 하에서 이러한 제도적 요소들 사이의 조화가 성숙된 것이 오늘의 미국이다.

그러면 신4당 체제의 등장과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부결을 통해서 본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첫째, 정당들은 여전히 국회에서의 표결을 정치적 대결로 인식하고, 의원총회를 열어 당론을 결정한 다음 투표를 하려고 한다. 대통령제 정부형태에 어울리지 않는 구태정치의 모습이다. 이번 표결에서 통합신당만 당론을 정해 투표하고 야3당은 자유투표를 했다. 둘째, 양당제가 붕괴되고 정당들 사이의 이념적 대결이 격화되고 있다. 민주당의 분당, 대통령의 '코드정치'가 낳은 결과이다. 셋째, 대통령이 국회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기보다는 반대편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과거의 정치행태가 가시지 않고 있다. 대통령제 권력구조에서 입법부와 사법부는 고유의 의사결정방식에 따라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그 결정을 서로가 존중한다.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는 이러한 원리를 무시할 때 나타난다.

지금 같은 정치상황이 초래된 데는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책임이 크다. 말로는 지역주의와 구태정치의 극복을 내세우면서 과연 실제적으로 구태정치의 행태에서 벗어났는지 의심스럽다. 입법부나 사법부가 자신들의 코드에 맞지 않는다고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정치를 하겠다면 국정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도덕주의는 자신은 선이고 남은 악이라는 그릇된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국민을 편가르고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정치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대선은 결코 혁명이 아니었다. 현재의 집권세력은 후보단일화 이전의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도를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도덕적 오만은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국민을 불행하게 만들 따름이다.

정 진 영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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