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미국 예일대 의대는 이 대학 교수를 지낸 정신분석학자 스티븐 플렉 박사가 9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플렉 박사는 예일대 의대에 40년간 봉직하면서 가족이 정신분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로 큰 업적을 남긴 인물. 그가 1966년 발표한 '정신분열과 가족'은 이 분야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저명한 정신분석학자의 죽음 앞에서 누구 못지않게 옷깃을 여민 사람이 이시형(69) 사회정신건강연구소장이다. 이 소장은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해준 스승이 플렉 교수라고 믿고 있다.이 소장은 65년 예일대 의대 정신과 수련의(일명 포닥) 과정을 밟기 위해 인터뷰를 하면서 플렉 교수와 처음 대면했다. "우연히 플렉 교수가 어느 학회지에 발표한 '가족이 정신분열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을 읽었는데, 서양학자가 가족과 정신질환과의 관계를 연구한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이 분에게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입학 신청을 했더니 인터뷰를 받으라는 연락이 온 거예요."
마른 체구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백발의 플렉 교수는 호감을 주는 첫 인상이 아니었다. 플렉 교수는 이것저것을 속사포처럼 질문하더니 "특별하지 않군"하는 한마디를 던지고 일어섰다. 불안해진 이 소장은 이 대학의 지인에게 인터뷰 내용을 털어놓았는데, 대답이 의외였다. "플렉 교수가 그렇게 말했다면 보기 드문 칭찬이다. 합격은 따놓은 당상이니까 굳이 하버드 의대로 인터뷰하러 갈 필요가 없다." 이 소장은 하버드 의대에도 지원을 한 상태였다.
알고 보니 플렉 교수는 수련의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킨다는 이유로 '냉혈한'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가 미소를 짓거나 학생을 칭찬하는 것이 오히려 화제가 될 정도였다. 지인의 예상대로 이 소장은 장학금까지 받고 합격했다.
이 소장은 1주일에 한차례씩 배정된 플렉 교수와의 개인 면담을 준비하느라 밤을 세워야 했다. 그렇지만 칭찬을 듣는 경우는 드물었고 플렉 교수의 냉소적 화법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미스터 리, 당신 그렇게 함부로 진단하는 것을 보니 의료사고보험에 든 모양이군."
결국 이 소장은 졸업을 몇 개월 앞두고 병원에 입원했다. 영양실조에다가 가혹한 훈련으로 신경이 쇠약해진 때문이었다. 이러다가 졸업을 못하는 것이 아닌가. 이 소장은 암울한 기분으로 병실 창문을 내다봤다. 그런데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간호사가 어느 남자 분이 보내온 것이라면서 치킨 수프와 메모를 전해주었다. 메모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었다. '한국인들은 몸이 부실하면 영계 백숙을 먹는다고 하더군. 영계 백숙만큼은 못하겠지만 치킨 수프를 먹고 건강을 회복하기 바라네. 당신을 아끼는 스티븐 플렉.'
플렉 교수의 독특한 성격이 형성된 사정을 알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는 독일 유태계 집안에서 태어나 나치정권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해 하버드 의대를 졸업하고 자수성가한 인물이었다. 2차 대전에 참전하면서 죽음을 숱하게 목격했다. 유태계로서 차별과 전쟁의 참상을 겪으면서 그의 성격이 형성된 것이었다. 이 소장은 "플렉 교수의 개인사를 알게 되면서 그를 이해하게 됐다"고 회고한다.
이 소장은 예일대 졸업 후 근무여건이 좋은 버지니아 주립병원으로 옮겼는데, 이것도 플렉 교수가 주선해준 덕분이었다. 이 소장이 훗날 경북대 의대에서 교수 제의가 왔을 때 다른 좋은 조건을 마다하고 흔쾌히 수락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소장은 90년대 초반 플렉 교수의 건강이 좋지않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서 공부한 동료들과 기금을 모아서 보내기도 했다.
/이민주기자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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