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반 나타 주니어 지음·정승구 옮김 아카넷 발행·1만8,000원지난 100년 사이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큰 공통점은 무얼까? 대부분 골퍼들이 대선 후보 경쟁이나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점이다. 대통령 후보 패배자 목록에 올라 있는 앨 고어, 밥 돌, 마이클 듀카키스, 월터 먼데일은 모두 골프를 치지 않았고 골프에 대한 애정으로 소문난 경쟁자들에게 패했다. 골프를 치지 않으면서 대통령이 된 사람은 허버트 후버, 해리 트루먼, 지미 카터 뿐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재선에 실패했다.
과연 골프가 정치적인 성공과 상관이 있는 걸까. 골프 치는 행태에서 대통령의 성품이나 인격, 나아가 정치 스타일을 가늠할 수 있을까. 퓰리처상을 3차례나 받은 뉴욕타임스 탐사보도 전문기자 돈 반 나타 주니어는 미국 대통령 14명의 골프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은 이 책에서 골프장에서야말로 대통령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골프장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드러난다. 플레이어의 장단점은 물론이고 집무실 책상이나 회의실, 상황실의 희미한 불빛에서는 절대로 드러나지 않는 성격의 미묘함과 인격의 결점까지 말이다. 18홀을 치는 동안 플레이어가 인내심이 있는지, 성격이 조급한지, 유머 감각이 있는지, 질투를 하는지, 화를 잘 내는지 아닌지 등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골프가 '최고 권력자들이 첫 티샷에서 최후의 그린까지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주는 투명한 프리즘 역할을 한다'고 썼다.
골프와 정치 스타일의 직접적인 상관 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지만, 저자는 대통령의 성격을 골프장에서 얼마나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수많은 일화들을 자료와 직접 취재에 바탕해 깔끔한 글솜씨로 정리해서 풀어놓는다. 그리고 그 일화들은 하나 같이 재미있다.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된 클린턴 대통령은 멀리건(첫 타를 잘못 쳤을 때 벌타 없이 다시 치는 것) 샷을 남발했다. 6타를 쳐놓고 기록표에는 '4'라고 적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자기 자신도 감쪽같이 속이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며, 끊임없이 자가 발전을 이루는 에너지를 갖고 있는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이 골프장에서도 확연하다. 조지 W 부시는 아버지 부시와 어울려 골프를 즐기며 언제나 공격적이고 빠른 경기 진행을 좋아한다. 위험을 택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언제나 그린을 공략하기 위해 친다고 한다. 이런 특성은 그의 정치 이력에서도 볼 수 있다.
존 F 케네디는 부드럽고 정확한 스윙, 깨끗한 플레이로 역대 대통령 중 '베스트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민중의 챔피언을 갈망한 자신의 이미지와 상충된다고 믿어 골프에 대한 열정을 늘 숨겼다.
미국에서 골프가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아이젠하워가 마련했다. 그는 골프 사랑을 숨기려 하지 않았고 골프 산업 부흥을 적극 지원했다.
수많은 일화의 끝에서 저자는 이렇게 충고한다.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은 일단 골프를 치고 공개적으로 골프에 대한 정열을 드러내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그러나 주의할 점이 있다. 너무 잘 치지는 말 것. 유권자들은 자신들처럼 어설프게 공을 치는 대통령을 원하는 것이다. 골프의 대가보다는 차라리 골프에서 속임수를 좀 쓰는 '사기꾼'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머지않아 이 말이 한국에서도 유효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너무 성급한 판단일까.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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