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모두 세 장르의 글이 실려 있는 등 구성상의 결함이 많다. 그래서 '현재 미국에서, 나아가서 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의 한 사람'(표지의 문안에서 인용)이 쓴 글 같지도 않고, 또 그가 쓴 작품들의 빼어난 목록에서 빠져도 무방한 그런 책이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을 골랐는지를 곧장 말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에는 책장이로서는 찬탄 없이는 엿볼 수 없는, 작가의 육성이 진솔하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 책장이는 결코 작가 없이 단 한 순간도 존립이 불가능하니까.이 책은 시종 작가라는 글장이가 빠져 있는 미로와 같은 곤궁 속을 격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작가와 책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서 아직 조금이라도 환상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은 절대 보지 마시기를 당부드린다. 이 책에 대한 나의 불만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작가의, 자신을 바라보는 가차없는 시선이다. 오늘날 같은 탈 아우라(aura)의 시대에 창작의 영역에까지 이런 분석적인 눈길을 더할 필요가 있는지. 자신만 돈이 없어 선택받은 작가의 길을 못 가고 돌아가느라 그 고생이었다는 고백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엘리엇은 어땠고, 셀린은 어땠고, 윌리스 스티븐스는,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는 어땠고 운운 하는 데야(투덜투덜!).
그렇다면 책장이는 글장이의 비극을 아는가? 나 자신의 경험에서 말한다면 십분의 일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마 책장이는 죽어도 글장이의 소위 산고의 고통을 알지 못할 것이다. 오죽하면 천형이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그런 점에서 책장이는 글장이의 고통 위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도 가끔 글장이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사실 조언해줄 말이 전혀 없음에도 그렇게 해야 할 때가 있다. 모든 예술 작업이 그렇지만 글을 쓴다는 것의 참 의미도 손에 연필을 끼우고, 또 타자기 위에 손을 올려놓고, 혹은 요즘처럼 인터넷 서핑을 끝내고 컴퓨터 앞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밥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서 가능한 시간껏 자신의 작업을 회의 없이 밀어볼 것인가 하는 데 있다. 밥벌이의 어려움이 유독 예술가들만의 것일 리는 만무하지만 본말이 전도되어 밥벌이를 일삼는 가짜 예술가들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많은가(그들에게 저주 있을진저). 이런 가짜들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그것보다도 더 적극적인 의미로 예술가들을 진창으로 떨어뜨린다. 책장이가 되다 보면 가끔은 이런 일에 분개하기도 한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 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 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이 에세이 첫머리의 윗글을 읽으며 어느새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저절로 두면 부패하기 쉬운 세상, 소금 같은 존재인 이 세상 모든 작가들에게 책장이는 경배를 올린다. 그런데 폴 오스터의 신작은 언제 나오나.
/정은숙·출판사 마음산책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