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트 칸 엮음·김병화 옮김 한길아트 발행·1만3,000원'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은 스페인 출신의 명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1876∼1973)의 회고록이다. 첼로의 '구약성서'라고 불리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되살려 낸 음악사적 업적을 이룬 대연주가이자 스페인의 파시즘과 세계의 폭력과 광기에 저항한 예술가였다.
이 책은 한 음악 대가의 예술세계를 그린 책이기보다 폭력과 광기의 시대인 20세기 초·중반의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산 휴머니스트의 기록이다. 카탈로니아의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곳곳에서 날카롭지만 따뜻한 눈길로 세상을 바라본다. 민주주의를 전복한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에 대한 분노로 고국을 등지고 망명했고, 반유대주의, 파시즘, 전쟁의 참상에 대한 보도통제 등에 첼로로 저항했다. 그런 과정에서 슈바이처 박사, 벨기에의 엘리자베트 왕비,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등 수많은 세계의 휴머니스트와 교류하면서 주고 받은 희귀한 편지, 일화 등이 함께 소개된다. 공화주의자지만 국왕에게는 따뜻한 애정을 보내는 등 체제는 싫어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모습이 드러난다. 또 드뷔시, 알베니스, 크라이슬러, 사라사테 등 음악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는 대가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카잘스와의 교류 속에 친근하게 묘사되는 것은 충분히 음미할 만하다.
음악애호가에게는 그 동안의 잘못된 상식 하나를 바로잡아 줄 것이다. 카잘스가 1889년 바르셀로나의 한 고서점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필사본을 처음 발견했다는 기존의 상식은 허구다.
카잘스 본인은 '자서전을 낼 만큼 기념할 만한 삶이 아니다'고 겸손해 했지만 작가 겸 사진가 앨버트 칸이 희귀 사진과 함께 그의 기록을 정리했다. 첼리스트 양성원의 서문과 역자인 김병화의 카잘스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후기도 눈길을 끈다. 책을 읽은 후 마지막에 소개된 그의 옛 음반을 들어본다면 격동기에 삶에 당당했던 한 예술가의 신념을 음악으로 생생하게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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