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정법 위반에 대한 '범법성'은 부인할 수 없지만, 남북화해교류를 위해 빚어진 행위인 만큼 '가벌성'은 높지 않다.'법원이 26일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제외한 대북 송금 사건 피의자 6명 전원에 대해 검찰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실형을 면제한 것은 남북교류의 '이상과 현실'을 응축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유·무죄 판단의 쟁점이 된 '통치행위론'에 대해 법원은 일단 "대북송금은 통치행위로 볼 수 없다"는 특별검사팀 편에 섰다. 재판부는 "남북정상회담은 한민족의 운명과 관련해 대통령이 취한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합헌·적법성 심판 여부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가 분명하다"며 "그러나 이와 관련해 피고인들이 행한 대북송금 행위까지 통치행위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대북송금 과정을 통치행위에서 떼어낸 뒤 현대에 대한 부당 대출, 정부에 대한 신고 및 승인 없는 남북교류 등 피고인들의 실정법 위반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남북화해 등 피고인들이 실정법 위반에 이르게 된 목적도 상당히 고려했다. 재판부는 "남북정상회담은 민족화해, 남북경제교류협력 확대, 남북한이 서로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의 전환, 통일 가능성에 대한 인식 고양, 남북 이산가족 만남 및 긴장 완화, 외국인 투자 증대 등 측량하기 어려운 변화 내지 희망의 전조를 우리 사회에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법치주의의 원칙을 포기하고 비밀리에 사기업을 통해 대북송금을 실행, 국민적 의혹과 국론분열을 일으키고 북한을 '제도화의 틀'로 이끌어 내지 못했다"며 과정의 미숙함을 비판했다.
한편 특검 수사 당시부터 논란이 일었던 1억 달러의 '정상회담 대가성 여부'에 대해 재판부는 "대가라는 용어 자체가 혼란스럽게 사용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대가성 판단은 사법판단의 대상이 아니다"고 밝혔다. 또 북한이 '외국'인지에 대해서도 헌법의 영토조항과 평화통일 조항 취지에 비춰 외국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대북송금이 국내 금융기관의 소관을 넘어서는 현실을 감안할 때 외국환거래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날 재판장인 김상균 부장판사가 "무거운 마음으로 재판에 임했다"며 이례적으로 심경을 표한 뒤 전원 집행유예 및 선고유예 판결을 내리자 이기호 전 수석은 재판장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하기도 했다. 또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은 선고 후 "착잡하다"고 짧게 답한 뒤 법원을 떠났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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