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난타' 연기자들이 연습실도 없어서 밤중에 남의 회사 강당을 빌려 연습하던 시절, 제작자인 송승환 (주)PMC프로덕션 대표는 볼멘 소리를 하는 배우들을 이렇게 구슬렸다. "야, 이게 어디 보통 연극이냐. 세계 무대를 겨냥한 작품인데 이 정도 고생도 안한다면 말이 되느냐."그의 말대로 그런 고생이 드디어 빛을 발했다. 25일 저녁 7시(현지시각) 뉴욕 브로드웨이 뉴빅토리 극장에서는 한국의 사물놀이 리듬에 실린 유쾌한 퍼포먼스 '쿠킹'(Cookin'· '난타'의 영어 제목)이 극장을 가득 메운 500여 관객의 마음을 두드렸다. 뉴빅토리 극장은 브로드웨이의 중급 규모 극장으로 가족 관객이 많이 찾는 극장이다. 이날 공연도 아이들을 더분 가족 관객이 절반을 넘었다. 이들은 "독특하다" "관객이 함께 참여할 수 있어서 흥미롭다"는 등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특히 어린이 관객의 호응은 대단했다. "안녕하세요"라는 한국 인사말을 배우고 따라하거나, 배우들이 던진 공을 무대로 되던지고 관객이 직접 무대위로 올라가 만두빚기 시합을 하는 등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한국 연극 사상 첫 브로드웨이 입성을 앞둔 초조함으로 연일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송승환 대표는 첫 공연이 끝난 후 "이 정도면 대만족"이라고 흡족해 했다. 아역 배우로 시작해 하이틴 배우로 한창 인기를 누리던 83년 뉴욕으로 떠나 유학하던 시절 "언젠가 내 작품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리겠다"던 자신과의 약속을 드디어 이룬 셈이다.
앞으로 4주간 이 극장 무대에 오를 '난타'의 입장권은 이미 매진됐다. 교포 위문 공연 수준에 머물던 다른 공연과 달리 객석을 꽉 채운 관객들은 직접 '쿠킹'을 예매해 극장을 찾은 현지인 관객들이다. '쿠킹'은 현지 공연 가이드지인 '시티 가이드' 등에 꼭 보아야 할 공연으로 손꼽히고 있다. 송 대표는 이번 공연이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모범 사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난타'는 97년 제작비 1억원을 들여 만든 작품. "한국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후 '난타'의 하이라이트 테이프를 가방에 가득 담아 무작정 떠났습니다. 우리 작품을 돈 받고 팔겠다는 일념에서 뉴욕 도쿄 런던 파리 LA 등을 돌며 수많은 현지 제작자를 만났지만 '한국에서 연극도 하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요."
난타가 세계 무대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 3대 공연 기획사중 하나인 리처드 플랭클 프로덕션의 자회사인 '브로드웨이 아시아'라는 대행사를 만난 것이 계기였다. "브로드웨이 아시아 측은 처음 '난타'가 한국에서 성공했다는 것 말고는 내세울 게 없어서 브로드웨이 공연은 어렵다면서 두 가지 조건을 주문했어요. 하나는 세계적 연극제에 출품해 작품성을 인정 받을 것, 다른 하나는 작품의 취약점을 보완할 '쇼 닥터'를 투입해 세계 시장에 알맞게 작품을 수정하라는 것이었지요."
99년 세계적 연극제인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호평을 받은 후 그는 "당장 브로드웨이로 가자"고 재촉했지만 브로드웨이 아시아측은 "서두르지 마라, 공연을 계속해 작품을 더 숙성시키라"고만 조언했다. "그 후 전세계를 돌며 공연을 더 했죠. 1억원으로 시작한 '난타'는 99년 10억원, 2000년 38억원, 2001년 60억원, 지난해 100억원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절반 이상은 해외 공연에서 받은 개런티입니다." 그리고서야 마침내 브로드웨이 공연이 이뤄졌다.
이제 그의 꿈은 한결 커졌다. 브로드웨이 장기공연을 통해 우리의 '난타'를 세계의 '난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연극 '쥐덫'이 영국의 한 극장에서 50년 넘게 상영되고 있다. 이제 '난타'가 브로드웨이에서 그렇게 오래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뉴욕=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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