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9월27일 런던 출신의 레슬리 타운스 호프라는 35세 사나이가 할리우드에서 난생 처음 제 목소리를 라디오 방송에 실었다. 네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와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자란 이 사내는 그 때까지 버젓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이 날 방송에서 늘어놓은 우스개는 청취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며 그의 나머지 생애를 결정했다. 20세기 최고의 엔터테이너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보브 호프가 바로 이 날 '탄생'한 것이다.그 시절의 엔터테이너들이 대체로 그랬듯, 보브 호프도 할리우드에서 보드빌로 커리어를 시작한 뒤 뉴욕으로 진출해 뮤지컬 배우로 이름을 얻었다. 그는 이내 영화 배우와 가수를 겸하게 되었다. 1939년에 보브 호프는 처음으로 아카데미상 시상식의 사회를 보았는데, 이 일은 그 뒤 30년 동안 단속적으로 이어졌다. 보브 호프의 얼굴과 이름을 모든 미국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은 그의 쇼가 NBC 텔레비전을 타기 시작한 1950년 4월9일 이후다. 그 뒤 미국인들은 그의 짤막한 농담과 의뭉스러운 표정에다 삶의 시름을 녹였다.
보브 호프에게 '애국적 미국인'의 이미지가 들러붙은 것은 주로 그의 군 위문 공연 덕이다. 1941년 3월6일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의 마치필드 공군 기지에서 시작된 그의 군 공연은 걸프 전쟁이 터진 1990년까지 계속됐다. 그 사이에 그는 미국만이 아니라 한국과 베트남을 포함해 미군이 싸우고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병사들의 애국심을 북돋우고 향수를 달래주었다. 그가 1백회 생일을 맞은 지난 5월29일에는 미국의 35개 주가 이 날을 '보브 호프의 날'로 선포하고 축하 행사를 성대히 벌였다. 보브 호프는 그 두 달 뒤인 7월27일 캘리포니아의 톨루카 레이크 자택에서 작고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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