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약(弱)달러 시대를 예고한 두바이발(發) 환율쇼크가 한국경제 최대의 복병으로 등장했다. 지난 주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서방선진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로 촉발된 세계 증시와 환율의 동반 폭락세는 일단 진정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앞으로도 달러 약세 및 이에 따른 원화와 엔화 강세 기조는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미국 재계는 "한꺼번에 위안화는 25%, 원화는 10% 절상되면 좋겠다"며 노골적인 '아시아 두드리기'에 나섰다. 미국과 중국·일본 등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환율전쟁'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이 틈바구니에서 한국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강대국의 환율전쟁
G7이 최근 수년간의 침묵을 깨고 '유연한 환율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성명을 낸 것은 사실상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시장에 '환율전쟁'을 선포한 것과 같다. G7국가 중 가장 선봉에 서있는 나라는 미국.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부시 정부가 국내총생산(GDP)의 5%를 넘는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 적자 등 '쌍둥이 적자'를 줄이고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유럽을 부추겨 아시아 압박에 나선 것이다. G7 성명은 사실상 각국 무역적자 확대의 주범인 중국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이지만, 중국 정부가 달러화에 고정(페그)된 위안화 환율제도를 당분간 고수하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주변국인 일본이 직격탄을 맞고, 한국도 유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제2의 플라자합의 될까
이번 두바이 성명은 10년간의 달러 약세를 이끌었던 1985년 플라자합의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80년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 국제금융 책임자로 일했던 에드윈 트루먼은 "G7이 그간 환율문제에 대해 합의점을 찾지 못했던 만큼 이번 성명은 주목할 만하다"면서 이번 성명은 '플라자 합의의 아류'라고 평가했다. 만약 이번 두바이 성명이 플라자합의와 같은 파괴력을 갖는다면 세계경제에 다시 한번 거대한 태풍이 몰아치게 된다. 그러나 85년과 지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당시 화폐 절상압력의 주타깃이 됐던 일본과 독일은 기운이 넘쳤지만, 지금은 일본이 기력이 쇠해 고통을 감내할만한 체력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일본이 '환율조작국'이란 오명을 쓰더라도 경제회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엔화 강세를 방치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또 달러 약세, 위안화 평가 절상에 따른 세계 각국의 이해관계도 엇갈리기 때문에 이번 G7성명의 파장은 플라자합의만큼 강력하진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달러약세, 각국별 득실 엇갈려
우선 미국은 수출경쟁력과 고용사정이 호전되면서 경기회복에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달러 가치의 급격한 하락은 결국 주식, 채권 등 미국 금융자산의 국제적 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투자자금의 해외유출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24일자에서 "미국 경제 자체가 환율전쟁 후폭풍의 희생양이 돼 금리가 급등하고 주가가 하락할 위험이 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달러 약세로 수출가격 경쟁력을 앉아서 까먹게 된다. 일본의 경우 10년 장기 불황 끝에 가까스로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달러 외채가 많은 기업에는 득이 되고 수입물가도 내리는 등 반사 이익도 얻을 수 있지만 수출 손실이 더 크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위안화의 평가절상은 반갑겠지만, 달러의 지나친 약세는 유로화의 강세를 가져와 부담이 될 수 있다. 이처럼 각국의 이해득실이 엇갈려 달러화 급락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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