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은 확인되지 않은 무장세력에게서 공격을 받았다. 그들은 건물 안으로 도망쳤고 이를 포위한 미군은 지원 공습을 요청했다. 적어도 적군 한명은 숨졌다."23일 새벽 이라크 중부 팔루자 인근 한 마을에서 발생한 '전투 상황'에 대한 미군측의 간단한 설명이다. 이제는 일상적인 일이 된 무장세력과의 교전인 셈이다.
이번엔 사건 발생 직후 현장을 다녀온 영국 일간 가디언의 보도. "새벽 2시, 농부 알리 칼라프의 집에 미군 82공수사단 병력들이 들이닥쳤다. 마당의 천막 안에 자고 있던 알리의 동생 아흐마드가 시끄러운 소리에 깨어나 나간 직후 소란이 일더니 곧 총격이 시작됐다. 한 시간 이상 계속된 총격과 뒤이은 공습으로 아흐마드, 같은 집에 살던 사촌, 총성을 듣고 도와주기 위해 달려나왔던 이웃사람이 숨지고 아흐마드와 함께 자던 어린 두 아들 등 3명이 다쳤다. 마당에는 피묻은 매트리스 옆으로 움푹 패인 폭탄 자국이 선명했고 농가 벽에는 한눈에도 100여발의 총탄 자국이 들어왔다. 전기도 거의 들어오지 않고 제대로 된 식수도 나오지 않던 이 허름한 농가에서 이들이 미군에게 무기를 들고 대항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미군이 어떠한 이유로 이 농가를 급습했는지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이날 아침 미군 장교가 농가를 방문해 사진을 찍고 유족들에게 간단한 사과의 말을 건넸다는 증언이 사실이라면 미군은 엄청난 화력을 퍼부어 무고한 민간인을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현지에서는 이 사건을 이라크 민간인에 대한 미군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보여주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들어 이라크인을 향한 미군의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군은 날이 갈수록 치밀해지고 정교해지는 무장세력들의 공격에 신경이 곤두선 상태.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동료의 전사 소식은 "이라크를 해방시키러 왔다"며 애써 이라크인들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던 전쟁 초기의 자신감을 사라지게 했다. 민간인 복장을 한 게릴라가 언제 총을 꺼내들지 모르는 탓에 오인 사격과 과잉 대응이 잦아지고 또 과격해졌으며 이는 다시 이라크인들의 반미 감정을 고조시키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가디언은 "이라크의 불안한 상황은 이제 사담 후세인 추종세력들의 일부 도발보다는 대부분 미군에 의해 모욕을 당한 일반 민중들로부터 기인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군측이 민간인 희생자에 대해서는 집계조차 하지 않고 명백한 사건조차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등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것도 분노를 사고 있다. 이제는 후세인 추종세력이 아닌 일반인들조차 미군을 상대로 보복을 감행하는 실정이다.
이라크 주둔 미 지상군 사령관인 리카도 산체스 중장은 지난주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군이 작전 도중 사고로 민간인을 숨지게 했을 때 그들의 종교와 가치, 문화에 근거해 보복을 해오는 것을 봐 왔다"고 시인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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