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평균 가동률이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67%를 밑도는 가운데 중소기업의 산업기반이 붕괴 위기에 몰렸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제조업의 탈(脫)한국 가속화, 대기업-중소기업간 종속, 인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고리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다는 주장이다.밑도 끝도 없는 침체의 늪
2003년 7월 중소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66.7%. 1999년 1월 이래 최저치다. 공장 3개 중 1개는 놀고 있는 셈이다. 경영 자금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다는 업체도 최근 3개월간 연속 30%를 상회하고 있다. 6개 중 1개 업체(17.6%)만이 자금부족을 호소했던 것과 비교하면 2배 가량 늘어났다. 시화공단에서 플라스틱 사출업체를 운영하는 김모(58) 사장은 "단군이래 최대의 불황"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불황 장기화에 따른 내수침체로 경제 전체의 활력이 눈에 띄게 떨어져 있는 가운데 수치로 드러난 중소기업의 부진은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서민경제와 잇닿아 있기에 그 파장이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정부는 "경기가 바닥에 도달하면서 경영난이 가중됐지만 경기 회복과 함께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최악의 불황이라지만 대기업을 포함한 제조업의 평균 가동률은 70% 후반을 유지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이 1998년의 6.0%에서 2002년에는 4.9%로 떨어지는 동안 대기업과의 격차는 0.5%에서 3.1%로 확대되고 있다.
경기 순환 아닌 구조의 문제
최근 삼성경제연구소는 중소기업의 불황이 경기 순환의 문제로 풀이할 수 없는 수준에 접어들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경기가 아닌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이며 경기가 회복된다 하더라도 중소기업계와 우리나라 산업 기반의 붕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인력난이다. 중소기업에서 일할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게다가 고학력자들의 중소기업 취업 회피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이직률도 높아 기술축적이 되지 않는다. 매번 새 인력을 고용해 재교육 시켜야 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삼성경제연구소는 주장했다.
제조업체의 탈한국 현상은 중소기업에 직격탄으로 작용하고 있다. 90년대 말까지 대기업의 20∼40%에 불과했던 중소기업의 해외투자는 2000년 1대 1로 비율이 높아진 이후 2003년 상반기에는 8.4억달러로 대기업 투자액 7.8억달러를 상회할 정도로 급증했다.
이 같은 중소기업의 기반 붕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종속적인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단가 인하, 일방적인 납기일 조정, 대리영업 강요 등 대기업의 수익성 강화를 위해 중소기업이 희생해야 하는 일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근로환경도 격차가 심해지면서 중소기업 인력난 또한 가중되며, 결국 중소기업은 낮은 인건비와 보다 나은 기업 환경을 찾아 외국으로 빠져나갈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중소기업에 활력 줄 정책 필요
삼성경제연구소측은 "중소기업들을 집적화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중소기업 현안을 조기에 해결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인력난 해소를 위해서는 일본의 중소기업노동력확보법과 유사한 중소기업인력지원특별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중소기업 장기근무자에 주택공급을 우대하고 소득공제 확대하는 등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중 으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협력을 강화하고, 공정한 경쟁환경을 마련하는데 있다. 대기업이 경쟁력있는 중소기업을 파트너로 보는 시각전환을 기반으로, 납품단가 적정화, 발주 안정화, 납품대금 결제 조건 등이 자리잡아야 한다.
한편 경제 전문가들은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자본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관련법령의 정비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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