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화계에서 가장 논쟁을 많이 불러일으키는 영화감독은 단연 김기덕이다. 승려의 일생을 4계절에 비유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로선 이례적으로 15세 관람가를 받은 ‘순한’ 영화. 투항인가, 성숙인가.김기덕 영화의 변화?
기자1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김기덕 작품으로선 여러가지로 이색적이네. 덜 잔인해졌고. 원래 김기덕 영화의 본질이 종교적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더군.
기자2 김성동의 ‘만다라’가 지극히 인간의 한계 그 끝을 향해 치닫듯, 김기덕 영화도 인간으로서의 인내의 한계를 느낄만한 상황, 그 끝자락에서 깨달음이나 달관을 보여주는 경향이 많았지.‘ 나쁜 남자’가 그 대표적인 경우 아닌가.
기자1 ‘나쁜 남자’에서 트럭에서 몸 팔 때 찬송가가 흘러나왔다고 하더군. 기억은 안 나지만. 채찍으로 자기 몸을 때리면서 기도하는 수도승, 좀 엽기적인 수도승이랄까 그런 면이 김기덕에게는 있는 듯;.
기자2 김기덕 감독은 보기보단 참 약하다는 느낌을 받았어. 비난을 견디는 힘이 좀 약한게 아닌가 싶은 느낌도 들어. 아마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적은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나는 그가 프랑스 유학파나 NYU 출신이었더라도 이다지 큰 비난을 받았을까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 가방끈이 짧은 감독에 대한 텃세라는 느낌도 들고…. 김기덕은 우리나라에서는 망나니 취급 당하다 외국 영화제에서 환대를 받으니깐, 그제서야 대접을 해주는 것 같아.
기자1 이번 영화는 유럽의 지적인 관객을 염두에 두고 만든 듯해. 마치 첸 카이거 식의 오리엔탈리즘이랄까, 물 위에 뜬 아름다운 절, 예쁜 미장센, 반야심경을 칼로 파내는 선적인 인공미 등등이 유럽 관객 지향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야.
기자2 이번 영화를 보면 김기덕 영화의 강점이랄 수 있는 장점이 총망라되어 있지만, ‘타인의 시선’을 너무 많이 의식한 듯한 느낌… 그건 자신을 지지해온 유럽 지식인과 자신을 비난해온 페미니스트 모두를 의식한 듯한.
김기덕의 인간관
기자2 인간관은 어때? 이를테면 인간적 본성이 윤회된다던가, 인간의 악마성 역시 커다란 본성의 틀에 속한다던가. ‘봄여름…’에서 보여주는 이 정도의 인간관은 성숙한 것으로 보아야 하나?
기자1 자기만의 세계관을 영화로 일관되게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그의 영화의 가치를 드러내지 않나.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이 놓칠까봐 우려한 나머지 메시지를 반복하는 측면은 약간 아쉽지만. 아이가 개구리와 뱀을 괴롭히는 장면 말야.
기자2 김기덕 영화는 항상 독창적인 듯 하지만, 마지막에서 지나친 작위성으로 인해 그간의 결실을 깎아먹는 듯해. 김기덕 영화의 미덕은 무엇이라 생각?
기자1 자기 사상, 자기 그림, 자기 스타일을 일관되게 펼쳐나가는 힘이 있다는 것. 비록 그 힘이 거칠고 원시적이지만, 그 원시성으로 인해 우리가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한다는 것.
기자2 어거지 같은데 그것을 끌고 가는 힘이 있다는 것이 김기덕의 힘. 사랑하는 여자를 창녀로 팔아먹는 남자, 아내를 죽이고 바늘을 삼킨 남자 등 모두들 비현실적인 인물인데, 이들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것은 그의 이야기 꾼으로서의 탁월한 재주가 아닐까. 왜 그의 영화는 왜 200만, 300만명이 들지 않는 것일까.
기자1 ‘나쁜 남자’의 경우가 예가 될 듯한데, 조재현의 연기에 힘입어서 80만이 들었잖아. 다른 작품도 좋은 인기배우와 결합될 경우 조금 더 폭발력을 얻을 수는 있을 듯.
김기덕은 제 2의 임권택?
기자2 김기덕의 영화는 판타지가 없기 때문에 아마 관객을 많이 몰아올 수 없는 듯. 김기덕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유럽 지식인이 많은 것도 아마 비록 과장됐지만 비참한 현실 감각이 돋보이기 때문일지도 몰라.
기자1 현실의 남루함을 끝간데까지 보여주기 때문에? 하지만 이번 작품은 사계의 아름다움, 이를테면 설산이나 절간의 미장센 등을 통해 선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기자2 문제는 저예산 영화가 엉성한 완성도와 같은 이름으로 불려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가끔 김기덕 영화의 디테일은 참 엉성하다 싶을때가 있어. 하지만 이번 영화는 지극히 간결한 공간과 시적인 스토리를 보여주니 그 엉성함이 드러나지 않아 좋은 것 같아.
기자1 하지만 감독 본인은 그런 대사나 엉성함 같은 거에 대해 전혀 개의 치 않더군. 그런 엉성함이 주는 생생한 날것의 효과를 믿는 것 같아. 그만큼 야생의 에너지로 가득차있고, 그만큼 욕을 심하게 먹고 그럴 작가는 없을 듯.
기자2 김기덕은 한국 영화계의 영원한 천덕꾸러기. 아무리 영화를 잘 만들어도 홍상수나 허진호가 받을 찬사의 절반도 받지 못할 사람(김기덕을 칭찬하는데는 평론가들이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듯). 그러나 두 사람으로서는 죽어도 따를 수 없는 엄청난 생산력을 가진 감독.
기자1 난 그 엄청난 생산력이, 임권택식의 득도를 만날 순간이 올거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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