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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송두율씨의 경우

입력
2003.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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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과 같은 대명천지에 국가가 무고한 사람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인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에 그렇다. 마찬가지로 있는 죄를 감추려 하는 시도 역시 성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고도로 발달한 수사기법이 거짓에 쉽게 눈감고 넘어가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과거 암울했던 시절엔 소위 관제 빨갱이도 양산 한 적이 있었다. 또 억지로 엮은 시국사건으로 공포감을 주기도 했다. 국민에게 동의 받지 않은 체제를 유지하려다 보니 이런 무리수가 불가피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민주화한 오늘까지 그런 음습한 공작이나 반인권적 행위가 있으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재독(在獨)학자 송두율씨의 북한 공작원 시비는 명확히 가려져야 한다. 마침 송 씨가 우여곡절 끝에 지난 22일 가족과 함께 귀국, 출국정지까지 당한 채 국정원에서 자신에 대한 각종 의혹을 조사 받고 있다.

정부가 무고한 귀화 독일인에게 터무니없는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인지, 아니면 북한에 포섭된 송 교수가 공작활동을 하면서도 위장하고 있는 것인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억울한 공안 피해자도 없어야겠지만 조국을 배신하고도 거짓으로 호도하려는 인사까지 우리가 포용해야 할 까닭이 있겠는가.

이 시점에서 "설사 송 씨가 북한 노동당 후보위원 김철수라 밝혀지더라도 북한에서 정치국원 이상의 사람들이 오가는 마당에 처벌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 법무장관의 언급은 매우 적절치 않다. 서울을 다녀간 김용순 등은 북측을 공식 대표해 온 것이지 공작원 신분이 아니다. 만약 송 씨가 김철수인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국가와 국민을 모두 속인 것이다. 동정 받을 여지가 없다. 그를 민주인사로 초청한 단체 역시도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송 씨는 우리정부가 터무니없는 짓을 하고 있다고 소송까지 제기하지 않았던가.

정보당국은 송 씨가 자수간첩 오길남씨 일가족의 방북을 주선하는 등의 이적행위를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송 씨가 김철수 임은 97년 귀순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도 확인한 바 있다. 송 씨는 김일성 장례식에도 초청 받는 등 북한에서 거물대접을 받고 있음이 확인된다. 더구나 송 씨가 김철수라는 사실과 북한 공작책 임을 단정한 것은 이념문제에 관한 한 역대 어느 정권 보다 관대했던 DJ정부에서다. 이런 전후사정으로 보면 송 씨에 대한 세간의 의혹이 쉽게 풀리기가 어렵지 않나 보인다.

황장엽 씨는 송 씨가 명예훼손 배상을 요구한 재판부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가 송 씨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것은 내가 노동당 비서였다는 것을 의심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황 씨가 거짓말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럼에도 송 씨는 지금까지 이를 깡그리 부인해 왔다. 그간 몇 차례 귀국 기회가 있을 때도 당국의 조사방침을 탓하며 오지 않았다.

자신이 떳떳하다면 조사에 응하지 않을 까닭이 무엇일까.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민주국가다. 60년대 동 베를린거점 간첩단 사건처럼 무리하게 수사할 악명 높았던 중앙정보부도, 보안사도 없어진 지 오래다. 다행히 송 씨가 이런저런 사정을 알면서 귀국했다.

차제에 그가 받고 있는 의혹에 대해 숨김없는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자신이 꿈에도 그리던 고국에서 '경계인'이란 수사(修辭)로, 혹은 독일국적이라는 이유로 피해가려 해서는 안 된다

지금 미국의 한 연방교도소에는 '로버트 김'이란 한국계 미국인이 간첩혐의로 7년째 복역중이다. 미 해군 군속이었던 그는 고국 한국이 꼭 알아야 할 몇 가지 군사정보를 한국무관에게 넘겨준 혐의다.

지난해엔 장남을 면회하려 갔던 9순의 부친이 쇼크로 지금 혼수상태에 있다. 장남으로서 임종이라도 할 수 있게 주위에서 가석방 은전을 호소하고 있는 중이다. 로버트 김과 송두율, 상반된 두 존재는 한국현대사의 비극임에는 틀림없을 듯 싶다.

노 진 환 주필 jhr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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