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왠지 허전하고 뭔가 그리워진다. 이제 막 사랑을 알아가는 사춘기 소녀부터 한창 사회의 쓴맛을 보기 시작한 20대 청년, 혹은 딸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50대 아버지까지…. 저마다 어떤 방식으로든 팔을 스치는 바람을 맞이하며 가을의 쓸쓸한 정취를 느낀다.작정하고 제대로 한번 우수에 푹 젖어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면 몇 년간 창고에 쌓아둔 채 잊고 있었던 LP를 꺼내 먼지를 조심스레 털어보자. 그때 그 세월의 향기에 한 번, 거슬리면서도 정겨웠던 특유의 잡음에 두 번, 그와 함께 듣던 그 멜로디에 세 번…. 조금씩 추억의 그 곳으로 돌아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LP는 CD로 들을 때 거북하게 들리는 낮은 음색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로 들으면 밋밋하기만 한 ‘모노(mono)’ 사운드도 너무도 생생하게 재생해낸다. 그 동안 등한시하던 낮고 느리고 단조로운 삶의 방식이 LP 안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턴테이블과 LP를 이미 고물상에 넘겨버렸다고 지나치게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도끼빗’을 꺼내 머리를 다듬던 ‘오빠’가 윙크를 날려주던 ‘음악다방’과 꼭 같은 것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LP의 선율에 젖을 수 있는 술집과 찻집이 아직 남아 있다.
바쁘게 살지않으면 뒤쳐지는 세상, 남보다 한발 앞서 가려고 재주부리는 군상들이 넘치는 세상, 그래서 가만히 있어도 스트레스 받는 세상, 그래서 느림의 미학에 괜히 끌리는 세상. 이 가을, LP의 향기에 맡으며 ‘산다는게 뭔지…’를 생각해보자.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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