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말 대부분의 언론은 순진하게도 16대 대통령선거가 3김 시대의 명실상부한 종식을 의미한다고 썼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 동교동 자택으로 향하는 모습을 스케치하면서도, 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한 시대가 끝나는 것이라고 주석을 달았다.그리고 열 달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존속하는 3김의 힘을 보고 있다.
1987년 민정 평민 민주 공화 4당 체제는 정계은퇴를 강요 당했던 3김이 화려하게 부활한 무대였다. 15년 후 신 4당 체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 그리고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까지 별로 줄어들지 않은 영향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며칠 전에는 "DJ가 불편해 한다"는 한 마디에 민주당과 통합신당 양쪽이 들썩거린 게 그 징표다. 분당사태에 대한 심경을 비서관이 간접화법으로 전한 말에 한쪽은 가슴을 바짝 졸이고, 다른 한쪽은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신당쪽은 대북송금 특검법을 수용한 게 첫 단추부터 꼬이게 것이라며 두고두고 대통령을 원망하고 있다.
말을 아끼고 있는 것 만으로도 DJ는 민주·신당 간 싸움의 향배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김원기 창당주비위원장을 비롯한 통추 출신 인사들은 95년 DJ의 국민회의 창당을 "정통성 있는 야당의 분열"이라고 비난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당측의 분당책임 및 정통성 공세에 제대로 말을 못하고 냉가슴만 앓고 있다.
YS도 안풍(安風·안기부 자금의 선거자금 유용) 사건으로 현실 정치의 한 복판으로 돌아오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악재를 맞은 한나라당은 YS에게 기대에 찬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부인이든 시인이든 나서서 과거와 현재의 매듭을 풀어달라는 것이다.
신당 일각에서 PK공략을 위한 전략으로 재론되고 있는 이른바 '신민주 연합론'도 YS의 옛 위상을 회복시켜주는 일들이다.
JP에게도 권토중래의 기회가 왔다는 게 중론이다. 4당 체제로 총선을 치를 경우 자민련이 현재 보다 의석을 늘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한나라당 뿐아니라 민주당과의 연대설이 모두 거론되고 있는 자민련 주변에서 더 이상 당의 존폐위기와 같은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결국에 내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현 정치권에선 아무도 3김을 우회하거나 넘어서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세 사람의 인물의 크기, 정치력만을 따질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런 상황을 놓고 유권자의 수준을 논할 게재는 더욱 아니다. 새롭게 조타수를 맡은 정치인들이 빈 공간을 채우기에는 너무나도 역부족이라는 이유로 설명될 수 밖에 없다.
3김 정치의 폐해는 굳이 다 거론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그 때는 대통령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면서 무당적으로 남아있겠다는 등의 잔 수는 없었다. 대통령의 아들들이 "별것도 아닌 일로 구속됐다"는 등 지역정서에 어설프게 영합하는 일도 드물었다.
3김 이후의 정치가 도리어 퇴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유 승 우 정치부 차장 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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