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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악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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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악취미

입력
2003.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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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사면 뭘 샀다고 꼭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고 나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집에 고이 모셔두었다가 마치 오래 전부터 갖고 있던 것처럼 입거나 지니는 사람도 있다. 남의 쇼핑에 대한 반응도 가지각색이다. 남의 쇼핑에 무관심한 사람이 있는 반면, 남이 뭘 샀다고 하면 꼭 그거 얼마 주고 샀느냐고 물어야 속이 시원한 사람도 있다. 그래서 얼마 주고 샀다고 말하면, "세일할 때 사면 훨씬 싸게 살 수 있는데…"라고 초를 친다. 세일할 때 샀다고 하면, 몇 % 세일이냐고 또 묻는다. 30%라고 하면 못내 안타까운 듯 쯧쯧 혀를 차며 "70% 세일도 있는데…"한다.이쯤 되면 정말 악취미다. 이런 사람과 평생을 가까이에서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줄 서서 배급 받는 사회주의 국가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이런 악취미는 모든 물품의 가격에 관심이 있다. 이들을 부드럽게 퇴치하기는 매우 어렵다. 가격을 낮춰 말해 약을 올리거나 부풀려 말해 혼란을 주는 일은 잠깐은 통쾌하지만 장기적 대책으로는 적당치 않다. 딱 하나 새 옷이라면 구겨 입고 새 물건엔 흙을 묻히는 것. 그것만이 그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들은 당신을 질투하고 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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