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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뻔한 남녀 뻔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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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뻔한 남녀 뻔한 사랑

입력
2003.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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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누군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연애에 성공하는 법을 가르쳐줄까?남자는 일단 사고뭉치여야 한다. 그 여자를 사랑하기 힘든 상황이면 더 좋다. 또 늘 잘 해주면 안된다. 바람 피우다가도 가끔씩 ‘진실한 눈빛’을 보여주면 된다. 물론 부자에 머리 좋고 능력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 여자? 여자는 좀 더 쉽다. 처음엔 활달하고 능력 있어 보이면 된다. 거기에 눈물을 예쁘게 흘릴 줄 알고, 힘들 때 남자에게 기대는 여자면 OK!.

망발이라고? 물론 망발이다. 이유조차 설명할 필요가 없는 그릇된 성적 편견이다.

그런데 한국의 인기 드라마는 이런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KBS ‘여름향기’나 SBS ‘요조숙녀’ 같은 전형적 트렌디 드라마로부터 근래 보기 드문 완성도를 보여준 MBC ‘다모’, 경찰 세계를 다룬 MBC ‘좋은 사람’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돈이 최고”라고 외치던 ‘요조숙녀’의 민경(김희선)도, ‘다모’의 다재다능한 조선 여형사 채옥(하지원)도 사랑 앞에서는 똑같다. 민경은 가난하지만 자신을 진실하게 사랑한다는 영호(고수)가 나타나자마자 생각을 바꿔 영호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채옥은 역적 장성백(김민준)을 사랑하게 되자 자신의 책무를 저버리고 그를 구한 뒤 황보윤(이서진)에게 돌아가 용서를 구한다.

‘심장이 뛴다’는 이유로 첫사랑을 저버리는 ‘여름향기’의 혜원(손예진)은 또 어떤가. 모두들 사랑에만 빠지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과거의 자신을 버린다. ‘좋은 사람’에서도 성격이 판이한 두 남자 주인공은 모두 조용하고 집안 일에도 능한 ‘현모양처’후보 순정(한지민)을 사랑한다.

남자? MBC ‘옥탑방 고양이’의 경민(김래원)이면 모든 설명이 가능하다. 그는 사고뭉치에 바람둥이지만 가끔씩 정은(정다빈)에게 애정을 보여주고, 부자에 명문대 법대생이다.

여자는 마음 남자는 능력, 혹은 남자는 능동적이고 여자는 수동적이라는 식의 편견이 지금까지도 TV를 지배하고 있다.

대중이 이런 설정을 좋아해서라고 할 수도 있다. 드라마는 재미있는 환타지로서의 기능도 필요하니까. 그러나 거의 모든 드라마가 이렇게 엇비슷한 설정의 남녀관계를 보여주니 식상할 수밖에 없다.

왜 드라마에는 ‘다른’ 방식의 사랑이 없는 걸까. 사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드라마이거늘, 일상 속의 평범한 사랑도 ‘사랑’이고 그 사랑도 사람을 설레게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은 보기 힘들다. 그러고 보면, 여자 등장인물 모두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사랑이외의 삶’도 있음을 보여주었고, 남자는 여자의 예쁜 얼굴이 아닌 ‘더러운 발’마저 사랑했던 MBC ‘네 멋대로 해라’는 참 독특한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하고 조금 지저분하면 또 어떤가. 그래도 사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면 그게 진짜 멋진 사랑이 아닐까.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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