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가 불던 날 밤 노무현 대통령이 가족과 뮤지컬을 구경한 것이 구설수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추석 이튿날인 12일 저녁 대통령 일가와 측근들이 뮤지컬을 구경할 시간대에 태풍 매미의 중심부는 남해안에 상륙하여 부산과 마산 해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대통령의 나들이 사실은 22일 국정감사장에서 뒤늦게 드러났다. 청와대 대변인은 "추석연휴 일정으로 오래 전에 계획되어 있었고 문희상 비서실장까지 초청한 상태이어서 취소하기 어려웠다"고 변명했다. 물론 뮤지컬을 보면서도 대통령은 태풍의 진행상황을 보고받고 있었다는 대변인의 설명이 뒤따랐다.■ 이 구설수를 보면서 2001년 6월 2일 북한상선 한 척이 제주해협을 통과했을 때 군 수뇌부가 골프장에서 이 상황에 대처했다고 변명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국방장관 합참의장 3군 참모총장이 함께 토요일 오후에 골프를 즐긴 사실이 알려져서 국회의 질타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 때 변명은 군 수뇌부가 골프장에서 사태추이를 보고받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위기상황은 아니었지만 국방을 책임진 수뇌부 5명이 모두 골프를 치며 이 상황에 대처했다는 것이 국민의 귀에는 찜찜하게 들렸다.
■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부시 미국 대통령이 공식일정을 취소하고 허리케인 보고를 받았다며 노 대통령의 뮤지컬 구경을 비난하고 나섰다. 하지만 1991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수십만 미군 병사들이 이라크 사막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자신의 개인별장에서 골프와 낚시를 즐겼고, 미국인들은 덤덤하게 이를 받아들였다. 아마 허리케인 이사벨이 미국 동해안을 강타했을 때 부시 대통령이 링컨 기념관에서 오페라를 구경했더라도 그리 큰 구설수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재난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 한 미국인들은 대통령이 사태전개에 일일이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양해할 것이다.
■ 대통령이 뮤지컬도 보고 영화관에도 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대통령은 잠을 자거나 취미활동을 하거나 사실 24시간 근무체제에 있는 사람이다. 국민이 이를 이해해줘야 한다. 그러나 그런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위기나 재난이 닥쳤을 때 이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잘 갖춰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 매미가 상륙했을 때 그런 유연하고 효과적인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대통령의 나들이는 더욱 어색하게 되었다.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너무 서툴게 일하고 있다.
/김수종 수석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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