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성적인 표현이나 과도한 신체적 노출이 있을 수 있습니다.’예술의전당은 28, 30, 10월2일, 4일 나흘에 걸쳐 오페라극장에 오르는 영국 연출가 데이비드 맥비커 버전의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안내문에 이런 문구를 삽입해야 했다. 입장가능연령도 이례적인 ‘중학생 이상’으로 못박았다.
‘여자의 마음’ ‘이것이냐 저것이냐’ 등 베르디 특유의 익숙한 멜로디가 돋보이는 아리아가 많아 학생들에게 추천되던 ‘건전 오페라’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오페라 초반 10여분 동안 나오는 ‘난교 파티’ 때문. 8명의 남녀가 1막인 만토바 공작의 궁정 장면에서 반라로 나뒹군다. 진실을 그대로 드러내면 당혹스럽기 때문일까. 이 버전은 2001년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한 후 놀라운 반향을 일으켰다.
파격적 연출이지만 연출가인 데이비드 맥비커의 의도는 원작을 사실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실제로 빅토르 위고의 원작 희곡인 ‘왕은 즐긴다’는 왕의 방탕한 생활을 묘사해 프랑스에서 초연 하루 만에 상영 금지를 당했다. 베르디와 대본가인 피아베가 검열을 피하기 위해 배경과 인물을 바꾸긴 했지만 그 안에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요소가 숨어있다.
여색을 밝히는 만토바 공작과 세상을 비꼬는 꼽추 어릿광대 리골레토, 리골레토의 아름답고 순결한 딸 질다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남을 비꼬면서 딸은 끔찍이 아끼는 리골레토, 질다를 유혹하려 하는 만토바 공작의 사이에서 순결한 질다가 결국 숨을 거두는 내용으로 저주와 복수, 살인 등 삶의 굴곡이 펼쳐진다.
질다역에 소프라노 신영옥, 만토바 공작역에 테너 호르헤 로페스 야네스, 리골레토역에 바리톤 프레데릭 버치널 등 세계적인 성악가들이 참여해 완성도를 높인다. 이들은 10년전 함께 호흡을 맞춰봤던 사이다. 특히 청아한 목소리의 신영옥씨는 ‘질다’역이 장기다. 1991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첫 데뷔무대도 같은 역이었다.
원 연출가인 맥비커는 현재 파리에서 ‘돈 조반니’를 연출 중이라 이번 공연에는 2002년부터 조연출을 맡아온 마르코 게랄디가 참여한다. 그는 “난교 파티가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라며 “베르디 원작의 숨겨진 모든 요소의 해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 연극적 요소를 강조할 뜻을 내비쳤다.
연극 전통이 강한 영국의 경우 오페라 연출가의 상당수는 연극인 출신이 맡고, 최고 권위의 연극상인 로렌스 올리비에상 중에 오페라 작품부문이 포함되는 등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연출자의 의도와는 달리 역시 대중의 관심은 난교파티 장면에 쏠려있다. 하지만 질다역을 맡은 신영옥은 “제 역할과는 이미지가 맞지 않잖아요”라고 말했고, 리골레토역을 맡은 바리톤 프레데릭 버치널도 “만약 내가 나체로 출연해야 한다면 당장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말해 성악계는 아직 보수적임을 드러냈다.
난교파티 장면은 엑스트라 8명이 진행한다. 하긴 주역급들이 반라의 연기를 펼친다면 관객, 배우 모두에게 정서적 충격이 더할 듯 하다. 3만~14만원 (02)780_6400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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