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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리포트 / 김진형 (주)남영L&F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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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리포트 / 김진형 (주)남영L&F 사장

입력
2003.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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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뒷짐지고 물러서 있어선 안됩니다. 현장에서 큰 영업을 해야죠." 란제리 전문회사인 (주)남영L&F(옛 (주)비비안) 김진형(48) 사장은 아직도 스스로를 '영업맨'으로 생각하고 있다. 1978년 평사원으로 입사한 이후 25년 동안 한 순간도 영업에서 손을 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영업은 근무 시간이 따로 없을 정도로 몰두해야 하지만 그에 따른 성취감이 확실한 매력적인 분야"라고 말한다.그는 입사 동기들을 모두 제치고, 영업사원 출신으로 처음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김 사장의 성공 뒤에는 남다른 노력이 숨어 있다.그는 지금까지 휴가 다운 휴가를 다녀온 적이 없다. 3년 전 2박3일 국내 여행을 다녀 온 것이 전부다. 영업부장으로 있던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는 매장에 있다가 변을 당한 직원 유가족과 함께 3개월 동안 시신을 찾으며 천막 생활을 했다. 지금도 김 사장은 당시가 가장 괴로웠다고 술회한다.

"처음에는 원사 메이커인줄 알고 입사했지만 막상 란제리 회사라는 것을 알고 '남자가 여자 팬티나 팔아서 되겠느냐'는 생각에 일주일간 무단 결근을 했습니다. 그러다 '이게 운명이라면 받아들이자'고 마음먹고 한 길만 열심히 팠습니다. 삼풍백화점 사고 같은 가슴 아픈 일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고경영자에 올랐지만 아직도 직원들과 삼겹살에 소주잔을 건넬 때가 제일 즐겁습니다."

김 사장은 영업 현장에서 부대끼면서 유통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터득했다. 1990년대 초 국내 속옷과 란제리 시장이 대형 유통업체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고 대대적인 판매전략 변화를 단행했다.

재래시장과 길거리 가게 중심이었던 란제리 유통 구조를 대형 할인점, 편의점, 무점포 등의 신유통쪽으로 바꿨다. 단일 브랜드, 단일 가격이던 제품을 멀티 브랜드에 가격도 세분화 시켰다. 유통 주체마다 다른 브랜드와 제품 컨셉을 채택했다.

그의 모험적인 시도가 빛을 보면서 비비안 브랜드는 속옷 업계의 강자로 부상했다. 당시 비비안은 내의 전문업체인 쌍방울과 BYC에 이어 3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유통 경로 변화와 제품 다각화의 성과가 나오면서 지난해 4·4분기부터 국내 속옷업계 매출액 1위로 올라섰다.

올해 상반기 경쟁 업체들이 모두 마이너스 신장을 하고 있는데도 남영L&F는 17%의 놀라운 성장을 보이며 매출 1,113억원(금감원 공시)으로 업계 1위를 차지했다.

"2위 기업이 1위가 되기 위해선 모방해선 안됩니다. 그들이 갖지 못한 것에 도전해야 합니다. 비비안은 경쟁사들이 재래시장과 길거리 가게에 머물고 있을 때 과감히 유통 라인을 변화시켜 결국 일등 자리에 올랐습니다."

김 사장은 영업 외에도 디자인과 품질에도 관심이 많다. 신제품은 반드시 입어 볼 정도다. 자신이 만드는 제품이 최고여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봉제, 바느질, 소재까지 소상히 파악한다. 웬만한 여성들을 보기만 해도 가슴과 히프 사이즈를 바로 알아낸다.

"학창시절 친구집 빨래 줄에 걸려 있는 여자 속내의도 쳐다보지 못했던 숙맥이 지금은 어딜 가나 여자 가슴과 다리를 먼저 봅니다. 고객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이 어떤 것이지 알기 위한 거죠. 부부 동반 식사할 때도 '브라자'라는 말이 자꾸 튀어나와 오해를 산적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먼저 제 신분을 알리곤 합니다."

김 사장은 '역지사지(易之思之)'를 경영 철학으로 삼고 있다. 고객에서 협력회사, 사내 직원에 이르기까지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협력업체에게 돈을 지불하는 체계를 온라인 자동 결제 시스템으로 구축한 것도 그들의 입장을 고려한 역지사지 발상의 하나다.

'인간미 넘치는 CEO'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는 김사장은 "재임 기간 중 눈앞의 매출 확대 보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 김진형 사장은 누구

▲ 1955년 강원도 원주 출생

▲ 1978년 (주)남영나이론 사원 입사

▲ 1989년 (주)남영나이론 영업부 부장

▲ 1993년 (주)남영나이론 이사

▲ 1996년 (주)비비안 상무이사

▲ 1999년 (주)비비안 전무이사

▲ 2002년 (주)비비안 대표이사 사장

▲ 가족: 최승희(43)씨와 1남1녀

▲ 취미: 골프, 독서

내가 감명깊게 읽은 책

'삼국지'의 등장인물이 만들어 낸 숱한 고사성어와 어록은 한 조직을 이끌어 가는 최고경영자(CEO)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특히 제갈량이 사랑하는 부하 마속을 벨 때의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 손권이 '여러 사람의 힘과 지혜를 부릴 수 있다면 감히 맞설 자가 없으며 성인의 지혜도 두렵지 않다'고 한 말 등은 기업 경영인들에게 리더십과 경영 마인드가 어떤 것인지를 일깨워 준다.

어찌 보면 제후들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1,800년 전이나 수많은 기업이 경쟁하는 지금의 경제상황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격언 중에서도 '뜻하지 않은 때에 나가고 방비가 없을 때에 공격한다'는 뜻의 '출기불의 공기무비(出期不意 攻期無備)'라는 성어가 기억에 남는다.

제갈량이 학소가 지키던 진창을 함락 시키면서 한 말로, 개인적으로 국내 유통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인 1990년대 중반에 아주 적절히 활용할 수 있었다.

당시 유통 업체 확장에 열을 올리던 다른 속옷 업체들과 달리 비비안은 2,000개였던 매장을 300개로 줄여 정예화 했으며, 숱한 반대 속에서도 할인점 전용 브랜드를 내놓았다. 이런 유통 전략은 성공을 거둬 속옷업계에서 1위를 차지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얘기를 자주 듣곤 한다.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한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라고 하지만(책략가를 경계하라는 말일 테지만), 어떤 상황에 맞서더라도 유연한 발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해 준 삼국지를 가장 든든한 동반자로 여기고 있다.

● (주)남영L&F는 어떤 회사

남영L&F는 여성 란제리 브랜드인 '비비안'으로 잘 알려진 속옷 패션기업.

1957년 창업자인 남상수 현 회장이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남영나이론'이라는 속옷 공장을 세우며 탄생했다. 1960년대 근대화 물결이 일면서 스타킹과 속옷을 크게 히트 시켰다.

1996년 사명을 자사 브랜드명인 '비비안'으로 바꾸는 것을 계기로 할인점과 백화점 위주로 유통 전략을 전환, 사세를 크게 확장시켜 올해 란제리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종업원은 공장 인력을 포함해 1,600여명. 2002년 2,061억원(6월 결산)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21% 성장한 2,23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8월 비비안 브랜드 중심의 마케팅을 강화하기 위해 사명을 '남영L&F'로 바꾸고, 로고도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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