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드라마 주인공을 한다고 하면 다들 웃습니다. 그런데 합니다.”한창 인기가 치솟고 있는 MC 김제동(29)이 드라마 주인공으로 변신한다. MBC가 11월1일 창사 특집극으로 준비 중인 단편 드라마(제목 미정)의 주인공으로 발탁된 것.
“처음에는 저도 설마했어요. 추석특집 ‘논스톱Ⅲ’에 출연했을 때 PD가 제안을 했어요. 드라마 주연을 해보지 않겠냐고.” 그가 주연을 맡게 될 드라마는 충견의 모험을 다룬 미국 드라마 ‘달려라 래시’처럼 개와의 우정을 그린, ‘짐승 냄새’가 물씬한 내용이다. “저보다는 개의 비중이 큰 것 같아요. 그래서 하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옆에서 얘기를 듣던 이진(핑클 멤버)씨가 그러더라구요. 개가 안됐다고.”
아직 기획 단계여서 언제부터 녹화에 들어갈지는 모르지만 김제동으로서는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학 축제 MC에서 지상파 방송의 오락 프로그램 MC를 거쳐 1회성 가수이긴 하지만 방송에서 정식으로 노래도 불렀고 CF에 드라마 주연 제의까지 받았으니 이제 영화만 하면 올해는 김제동의 해나 마찬가지다.
혹시 영화출연 제의도 받지 않았을까? “받았죠. 주연은 아니고 단역이었는데, 편의점을 터는 강도 역할을 맡아 달라는 제의였죠.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주연 제의라면 얘기가 다를 수도 있겠다. “마찬가지로 안 합니다. 생각해 보십쇼. 저를 주연으로 쓰는 영화가 잘 되겠습니까. 그런 영화사하고는 일 안 합니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하지 말라고 말릴 겁니다.”
2와 2,000의 공식
그가 방송에서 했던 말들이 다음날이면 '김제동 어록'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팬사이트(cafe.daum.net/kimjedong)에 실려 평균 2,000여 회의 조회를 기록.
최근에는 그의 방송을 녹음한 MP3 파일이 네티즌들 사이에 인기.
부산 동명대, 상주대, 서울여대, 연세대, 대구 과학대 등에서 강사로서 축제에 가까운 강의를 진행.
김제동은 그 동안 방송이나 언론 인터뷰에서 공개하지 않은 구석이 많은 연예인이다. 대표적인 것이 외모 콤플렉스와 성격. 방송에서는 곧잘 자신의 외모를 웃음의 소재로 써먹지만 정작 그 자신은 어린 시절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외모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그였으니 드라마 제의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의 외모가 이제는 친근함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본 셈이다.
“못 생긴 놈이 설친다는 말을 제일 싫어했습니다. 대학 때 미팅 나가서도 누가 말을 걸지 않으면 30분이 지나도 말 한마디 안 했어요.” 그러다 보니 내성적이고, 낯선 사람 앞에서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 돼버렸다.
그런데 어떻게 수 많은 대중 앞에 설 수 있었을까. 비결은 그의 이른바 ‘2와 2,000의 공식’ 때문이다. “두 사람은 더 없이 무섭고 불편하지만 2,000명은 편하고 즐겁습니다.” 개인보다는 무리에 강한 체질이다. “무대에 올라서 마이크만 잡으면 청중이 아무리 많아도 그때부터는 제 세상입니다.” 그에게 청중은 그 숫자를 떠나 친근한 하나의 벗일 뿐이다.
"야, 밥 굶어!"
청중 앞에서 그토록 자신만만한 그도 처음으로 떨었던 때가 있다. 9월9일 KBS2 TV ‘윤도현의 러브레터’ 추석특집 녹화 때 정식으로 방송에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 무대에 올라 한 없이 떨었다.
당시 그가 고른 노래는 김광석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와 ‘너무 슬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등 두 곡이었다. 그가 김광석의 열렬한 팬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팬 차원을 넘어 될 수만 있다면 김광석이 되고 싶을 만큼 푹 빠져있다. 하도 연습을 해서 김광석의 노래는 물론이고 공연에서 했던 멘트까지 그대로 성대모사를 할 정도다. 의외로 노래솜씨가 훌륭하다.
그의 김광석 사랑은 군대시절 일화가 말해 준다. “제대를 앞둔 고참병 때였어요. 어느날 아침 김광석이 자살했다는 뉴스가 나오더라구요. 이루 말할 수 없이 침울했는데 졸병 하나가 식판에 밥을 퍼가지고 가면서 ‘김광석이 죽었어요’ 하고 한마디 툭 던지고 가더라구요. 순간 녀석의 뒤통수가 그렇게 밉살스럽게 보일 수가 없었어요. 김광석이 죽었는데 이런 날 밥을 퍼먹는다는 사실이 기분 나빴습니다. 그래서 애들을 불렀죠. 야, 너희들 밥 굶어! 그날 하루 종일 굶겼습니다.”
김광석 사랑이 그토록 절절했으니 그의 노래를 부르는 심정은 오죽했을까. 김제동은 윤도현의 러브레터 녹화 때 윤도현의 통기타 반주에 맞춰 구성지게 노래를 불렀다. 덕분에 방청객들의 앵콜까지 받았다.
영어로 전 세계인을 웃기는 그날까지…
김제동의 꿈은 기상천외하다. 바로 영어로 전세계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오래된 꿈이다. 그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즘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타샤니 멤버였던 애니에게 개인적으로 영어 회화를 배우고 있다.
가끔 영어 실력을 무대에서 발휘하기도 한다. 외국의 유명 팝페라 가수가 TV에 출연했을 때 잠깐 통역을 했고 윤도현의 러브레터 녹화 전에 방청객들과 만나는 코너에서 영어 퀴즈를 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런 식이다.
“다음 중 난 당신을 사랑합니다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으로 적합한 것을 찾아주세요. 1번, 헬로(부드러운 어조로), 2번 헬로(화난 것처럼 소리를 버럭 지른다) 3번, FxxK you, 4번, 아이 러브 유.”
김제동의 인기 비결 가운데 하나는 감동적 마무리 멘트에 있다. 방송이든 무대든 마지막 정리하는 시간에 ‘고도원의 아침편지’처럼 의미 있는 문장을 들려주어 청중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신다.
“오늘 인터뷰의 마무리 멘트요? 인터넷에서 본 겁니다. ‘고독한 나무가 가장 강하게 자란다’는 말인데요, 힘들어도 그 시간만 이겨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죠. 저한테 비유하면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과 같습니다. 잘 생긴 나무는 중간에 잘려 나가지만 못 생긴 나무는 살아 남아 나중에 산에서 제일 큰 나무가 된다는 말이죠.” 결국 또 외모 얘기로 끝났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김제동은…
1974년생.
1남 5녀중 막내.
계명문화대 관광과 졸업.
삼성 라이온즈, 대구 동양오리온스 장내MC 및 대구 우방랜드 영타운 MC 등 10년 동안 이벤트 MC생활을 거쳐 지난해 12월 방송에 진출, KBS2 TV 윤도현의 러브레터, 폭소클럽, SBS 야심만만 등에 출연.
■김제동이 말하는 '대중앞에 서는 법'
“이렇게 하면 김제동 만큼 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김제동이 털어놓은 대중 앞에 서는 비결은 다음과 같다.
마이크 조작법을 정확히 알자 “농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대가 아닌 마이크 공포증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무대 공포증으로 착각하는 겁니다. 군인이 총을 다루듯, 적어도 마이크의 전원 및 뮤트 스위치 위치를 파악하고 마이크를 잡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MC들은 마을 이장님들입니다.”
두 명만 봐라. “무대에 오르면 딱 두 명만 정해놓고 쳐다보세요. 2명을 제일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고 안방에 앉아 대화를 나누듯 풀어가는 겁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리 많아도 까맣게 잊어버리세요. 나중에 관록이 쌓이면 보이는 사람 숫자가 점점 늘어납니다.”
웃기기 위한 비장의 무기를 하나쯤 챙겨라. “안경 쓴 사람은 안경을 벗고, 남자분들은 바지 지퍼를 내리고 무대에 올라가세요. 또 무대에 오를 때 심하게 넘어지는 것도 괜찮습니다. 고전적이고 무식해 보이지만 웃음은 사회자나 청중 모두에게 여유를 줍니다. 사회자가 두려움을 가지면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방법이든 청중의 웃음이 한 번 터지면 그때부터 자신감이 붙죠.”
/최연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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