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를 배우는 것도 아니고 무슨 스텝훈련을 그렇게 많이 하느냐고 하지요. 하지만 이것이 이번 승리의 요인이었습니다. 힘 좋은 유럽선수를 이기려면 상대가 한 발 움직일 때 서너 발짝 뗄 수 있을 만큼 빨라야 합니다." 14일 끝난 오사카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일본과 함께 금메달 8개중 3개(이란 1, 독일 1)를 획득한 한국 남자대표팀의 권성세(46·權聖世)감독. 15년간 보성고 무적시대를 연출하며 숱한 대표선수를 만들어 낸 그가 세계무대에 새로운 스타 3명을 등장시켰다.60㎏급 최민호(23), 73㎏급 이원희(22), 90㎏급 황희태(25)가 97년 전기영 조인철 김혁이 작성한 한국유도의 이 대회 최고성적을 재현하며 세계챔피언으로 우뚝 선 것이다. 하지만 6년만의 부활에 대한 언론이나 국민의 관심은 기대 이하였다. "한국 유도가 종주국 일본에 앞섰다"며 많은 국민이 흥분하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대표선수 한 두 명의 이름을 대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시들해진 게 유도의 인기이다.
귀국후 소속팀 보성고 선수들을 지도중인 권감독은 "옆의 동북고 축구부는 한 학년에 50명 뽑는데 200명이 몰린다는데 유도는 지원자가 점점 줄어 걱정입니다. 84년 코치를 시작할 때 66개였던 고교팀이 지금은 30개로 줄었어요. 그래도 복싱이나 레슬링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이 고비서 성적을 못 내면 우리도 미래가 없을 겁니다"며 안타까워 했다.
이제는 운동도 힘들며 돈 안 되는 것은 안 하고, 신문 방송조차 스포츠라면 축구 야구 농구 골프 등 몇 개 인기 종목만 경쟁적으로 다루는 실리위주의 악조건에서 그가 한국유도의 구원자로 나선 셈이다.
그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일본 대표들은 이미 기량이 100% 노출된데다가 내리막길인데 반해 우리 선수들은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으니 전망이 밝습니다. 일본과 금메달 수가 같지만 홈 어드밴티지를 본 일본보다 우리의 금메달이 훨씬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전세계선수권자, 시드니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등 강자들을 꺾고 딴 것이니까요. 예전의 관심과 사랑을 다시 한번 보여주십시오."
배명중-보성고에서 선수를 한 권감독은 전매청과 육군을 거쳐 인하대 창단때 트레이너겸 선수로 입학했다.
대학선수권 우승도 해 보았지만 태극마크를 단 적은 없었다. 대신에 2000년 11월 고교감독으로서는 처음 국가대표 감독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99세계선수권에 이어 2000시드니올림픽서도 금메달을 하나도 못 따는 참패를 당한 대한유도회가 고심끝에 대학이나 실업팀 감독에게만 주었던 지휘봉을 고교의 스타 메이커에게 넘긴 것이었다.
'감독 한명이 바뀐다고 내리막의 대세가 달라질 수 있겠는가?' 했지만 그는 2001 세계선수권서 금 1개(조인철)를 획득하고 2002 오스트리아오픈에서 금3, 동 2개로 종합우승을 만들어냈다.
당시 금메달리스트 장성호 최용신 이원희가 모두 보성고 제자였고, 특히 이원희는 척추분리증과 어깨 골반등의 잦은 부상으로 유도를 포기할 극한 상황을 극복하고 국제대회 첫 우승을 이루어 스승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보성고는 1988년 그가 감독 겸 교사로 취임하면서 성곡기 제패로 37년만의 우승이라는 감격을 안은 후 줄곧 최강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원희 최용신 정부경 장성호가 활약하던 97∼99년에는 단체전 47연승을 이루었다.
그동안 20여명의 국가대표를 배출했으며 2000년 올림픽에서는 대표 7명중 5명이 그의 제자였다. 현재 대표 1, 2진 14명 중에서도 7명(장성호 최용신 홍성현 이원희 권용호 정부경 박세우)이 보성고 출신이다.
권성세감독의 성공비결은 '즐기는 유도'이다.
현재 학교에서 중학생 20명, 고교생 30명을 지도하고 있는 그는 유도부 지원자 중 중도 포기자가 없는 것을 자랑한다. 주된 포기 원인이 '힘든 훈련' '체벌' '선배들에 대한 공포심' 인데 체벌이 없고 흥미를 유발하는 '기술유도'를 강조하기 때문.
"신입선수는 두 달 동안 훈련을 지켜보면서 흉내만 내도록 합니다. 그리고 쉬운 기술부터 가르쳐 흥미를 갖게 하죠. 무리한 체력훈련은 성장에 지장을 주고 관절에 무리를 주어 몸을 빨리 굳게 합니다. 또 체급경기에서는 체중조절이 중요하지만 중학 선수는 절대 체중을 빼지 못하도록 해요."
선수들이 새로운 기술을 하나씩 체득하며 기쁨을 느끼고 스스로 필요한 만큼 체력을 다지도록 한다는 것.
초반에 점수를 딴 후 시간을 끌며 도망 다니는 선수는 우승을 해도 혼을 낼 정도로 공격적이고 재미있는 유도를 추구한다. 절반을 따면 절반을 더 얻어 끝날 때까지 적극적인 경기를 펼치게 한다.
매년 한번씩 고사를 지낼 때는 "비겁한 승리는 수치이고, 최선을 다한 패배는 당당한 것이니 선수들이 이를 명심하고 실행토록 해달라"는 내용의 축문을 직접 써 읽곤 한다.
체력훈련도 특이한 점이 많다. 그 중 하나가 평지에서 장거리를 뛰지 못하게 하는 것. 몸의 중심이 위로 올라가기 때문이란다. 육상선수처럼 중심이 가슴으로 올라가면 몸이 빠르지만 가벼워지고, 긴장하면 밑으로 내려가 둔해지므로 유도선수는 항상 몸의 중심이 배꼽 주위에 있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게 그의 이론이다.
불암산을 뛸 때는 표면이 불규칙한 코스를 고른다. 발 딛는 데가 계속 바뀌어야 집중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 공식적으로 하루 6시간 반, 개인훈련을 포함해 8시간씩 운동하는 대표선수들에게 "25시간 훈련하라"고 주문한다. 도복입고 땀 흘리는 것만이 훈련이 아니고 잠잘 때 유도하는 꿈을 꿀 정도로 언제나 유도를 생각하라는 얘기이다. 그는 실제 1주일에 4∼5번 꿈을 꾼다고 한다. 항상 선수 한명 한명을 뜯어 보며 '무엇을 고쳐야 하나'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궁리하다 보면 잠깐 졸아도 꿈을 꾸게 된다는 것이다.
"유도에는 공식적으로 210가지 기술이 있습니다. 변칙까지 하면 훨씬 많고 국제대회에 가면 매번 새 기술이 나옵니다. 유도는 그만큼 연구를 많이 해야 하는 운동입니다. 유도출신 중에서 대학교수가 많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 같습니다."
그의 주위에는 한동안 "우승 많이 하면 뭐가 생기냐"며 빈정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고교선수들의 성적은 대학입학과 관계되므로 그의 독주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가 많았다. 그러나 대학, 실업팀 감독이나 할 수 있던 대표팀 감독이 되면서 그런 말이 쏙 들어갔다고 한다.
기술유도의 신봉자인 권감독은 대표선수들에게 "유럽선수들에게는 지구력은 맞설 수 있어도 근력은 안 된다. 이길 수 있는 건 발이다"며 틈틈이 스텝훈련을 시켰다. 10분만 하면 종아리 근육이 뻐근해질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훈련이다. 실제 이원희는 이번 대회 러시아선수와의 경기서 2m가량 뒤로 밀리는 위기를 맞았지만 빠른 발 덕분에 주저 앉지 않고 뒷걸음질로 중심을 잡아 승리할 수 있었다.
중학교부터 가르친 이원희는 머리가 좋고 상대선수를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일단 경기에 들어가면 현란한 기술로 선제공격을 퍼부어 대구유니버시아드에서 5경기 연속 한판승, 세계선수권에서 7경기중 6경기 한판승의 완벽한 승리행진을 벌였다. 93,95,97년 세계선수권대회 3연패를 이룬 전기영의 뒤를 이을 확실한 재목이다.
60㎏급 최민호는 평소 69㎏ 나가는 체중을 1년전부터 하루에 2번씩 체크하며 음식조절로 64㎏으로 끌어 내린게 승인이었다. 90㎏급의 황희태는 힘이 장사이나 권감독은 '힘은 보조역할'일 뿐이라며 누르기 기술을 강조해 이제는 누구도 못빠져 나올 기량을 갖췄고, 세계선수권 결승에서도 지난대회 2위이자 러시아 그랑프리대회 우승자인 그루지야 선수를 깨끗이 누르기 한판으로 제압했다.
권성세감독은 체육계에서 모두가 알아주는 집념의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해 부산아시안게임 전 태릉선수촌에서 대표선수들의 처우를 개선하라며 집단 훈련거부를 주동해 관철시킨 주인공이 그이다.
"대표팀 감독이 되었을 때 정말 부푼 꿈과 자부심을 갖고 태릉에 들어갔다가 중학교 코치보다 못한 처우와 열악한 시설에 울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전혀 대표로서 긍지를 갖고 운동에 전념할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부터 끊임없이 개선을 요구했던 게 안 고쳐져 크게 터진거죠. 대한체육회장님조차 실상을 알고 깜짝 놀라실 정도였으니까요."
결국 27개의 건의사항 중 병역문제를 제외한 26개가 해결됐다.
유석근 편집위원 sky@hk.co.kr
● 약 력
▲ 46세 서울생
▲ 배명중 보성고 전매청 인하대 선수
▲ 1984년 보성고 코치
▲ 1988년∼현재 보성고 교사겸 감독
▲ 1996년 청소년선수권대회 감독 (대통령표창)
▲ 2000년 11월∼현재 국가대표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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