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방문이 될지도 모르기에 모든 걸 가지고 왔습니다."'2003 해외민주인사 초청 한마당'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22일 입국한 해외민주인사들 중 왜소한 체격이지만 단연 눈에 띄는 푸른 눈의 여성이 한 명 있었다. 지난해 백혈병 판정을 받고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인데도 300여 편의 각종 희귀문건과 편지 등 사과상자 14박스 분량의 자료를 가지고 입국한 미국의 린다 존스(Linda Huffman Jones·59·여)씨가 그 주인공.
1972년 미국 시카고대 사회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존스씨는 미국 기독교 장로회를 통해 선교활동 목적으로 한국땅을 밟았다. 유신헌법 체제로 극도의 혼란상태에 빠져 있던 시절, 그는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소속 학생사회개발단 학생들을 모아놓고 제3세계에 대한 강의를 시작, 당시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지역의 상황을 소개하면서 학생들의 인식영역을 넓히는데 기여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1973년 유신체제 반대 학생운동, 이듬해 4월 민청학련 사건 등 굵직굵직한 한국 현대사를 경험하며 한국 민주화에 기여하기로 마음먹었고 이 과정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집을 학생들의 피신처로 제공하다 경찰에 연행돼 몇 차례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민주화 인사들을 충분히 도와주지 못해 늘 안타까웠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73년 10월 유신체제 반대 첫 학생시위에 참가했던 한겨레신문 통일문화재단 황인성(50) 사무총장은 "존스씨는 중앙정보부 요원에 쫓기던 나를 포함해 많은 학생들을 자신의 연희동 집에 안전하게 대피시켰다"며 "당시 한국 사람도 하기 힘든 일을 용기를 내 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로 올 초 미국 시카고 교외의 존스씨 집을 찾아간 가톨릭대 안병욱(55) 교수는 "허름한 단층 집에서 50여년을 살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는 그의 집 지하실 두 곳에는 희귀 문서, 사진, 포스터, 유인물, 영상물 등 70년대 온갖 자료로 가득 차 있었다"며 "기관이 아닌 개인이, 그것도 외국인이 이렇게 많은 자료를 체계적으로 소장한 경우는 처음 본다"며 감탄했다.
74년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본격적으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해외에 알리는 가교 역할을 시작했다. 당시 국제적으로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김지하(62) 시인의 저항시 10여 편을 빼내 미국 내 유명 문학가에 전달해 알려주었고 한국 내 시국과 인권상황을 전한 함석헌 선생의 편지를 미국 내 지인에게 전달해 주기도 했다.
또 외국에 알려지지 않았던 1978년 명동 3·1선언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윤보선, 김승훈, 함석헌 선생 등이 서명한 성명서 등을 미국 내 민주화 인사와 기관에 전달해 그 실상을 해외에 알리기도 했다.
존스씨는 "훌륭한 분들의 뜻을 알았기에 기꺼이 자료를 전달했을 뿐"이라며 "가족들이 이번 주말쯤 입국, 이번에 가져오지 못한 자료들을 추가로 가져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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