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태풍 '매미'가 강타하던 12일 저녁 가족들과 함께 청와대 밖 공연장에서 뮤지컬 관람의 휴일일정을 보냈다는 사실은 참담하고 씁쓸하다. 전국 일원에 특별재해지역이 선포될 정도의 막대한 피해가 닥친 날 대통령의 이 연휴일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그 태풍은 수십년 만에 가장 위력적으로, 중남부지역을 날리다시피 한 재난이었다. 며칠 전부터 예보 상태였던 데다 그날은 오전부터 총리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가 열리고 공무원들이 비상근무에 들어가 있던 위급한 시점이었다. 한밤중의 엄청난 강풍과 폭우에 우왕좌왕하던 농어민들과 서민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 시간 대통령은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분위기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노 대통령의 뮤지컬 관람은 뒤늦게, 그것도 국정감사 석상에서 야당의원의 질문에 의해 밝혀졌다. 앞서 김진표 경제부총리의 제주도 골프여행으로 배신감을 느꼈던 국민들은 마음이 쓰라리다. 그뿐인가. 당시 다른 요인들의 행적도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위기에 놓인 나라의 운영을 위임받아 책임져야 할 최고 지도부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
그 시간에도 대통령은 태풍피해 상황을 계속 보고받고 있었다고 청와대측은 말한다. 대통령이 지휘현장에 없어도 행정은 돌아갔다는 식이다. 그러나 국가적 재난에 한 나라의 대통령과 지도부의 이런 자세를 정상적인 집무형태라고 할 수는 없다. 사인의 일정이라면 모를까, 그것이 대통령의 일정일 수는 없었다. 얼마 전 비슷한 태풍을 맞은 미국도 이렇지 않았다. 대통령은 공무원이다. 그것도 무한책임을 요구받는 최고위직이다. 동석했던 비서실장을 비롯, 어느 누구도 그 일정을 문제시했던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은 더 허탈하다. 이러고도 민심을 얻을 수 있겠는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