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이한' 황석영(60)이 베트남 땅을 다시 밟았다. 35년 만이다. 1967년 '용병'으로 베트남에 파견됐다가 이듬해 귀국했다. 10여 년 뒤 그때의 체험을 옮긴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을 완성했고 영어와 프랑스어, 일본어, 대만어로 번역됐다. 그러나 그 이후 그는 베트남을 찾지 않았다."부끄러웠다. 작가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베트남작가동맹 초청으로 베트남을 다시 찾은 황석영씨는 21일 다낭에서 "솔직하게 말해 오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우리는 '참전 범죄자'다. 내가 직접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니지만 동료들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말리지 못했다."
다낭의 1년, 소설 '무기의 그늘'로
다낭은 그가 1년 이상 합동수사대(CID) 시장조사원으로 근무했던 곳이다. 보병이던 그는 호이안 시가전을 앞두고 전속 명령을 받았다. 매일 미군 PX를 드나들고 다낭의 시장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았다. 상인들은 겉으로는 평범한 물건을 팔았으나 뒤로는 무기와 식량을 팔았다. 정글에서는 총과 피와 주검 만이 보였다. 숲에서는 전쟁의 단면밖에 볼 수 없었지만 시장통에서 전체상을 보았다. 젊은 병사 황석영이 보기에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벌이는 비즈니스였다. 황석영씨처럼 시장조사원으로 다낭을 누볐던 '무기의 그늘'의 주인공 안영규의 깨달음이기도 했다.
"이곳이 도크랍('독립'의 베트남어) 거리요. 지금은 찬푸 거리로 이름이 바뀌었더군. 저쪽이 부둣가인데 배에서 내린 물건이 거래되지. 다낭 신시장이었소. 뒤쪽은 물건이 지방으로 나가는 구시장이고." 오랜만에 찾아온 거리임에도 곳곳을 안내하는 황석영씨의 발걸음이 익숙하다. 전쟁이 끝난 지 30여 년이 지났는데 거의 변하지 않았다며 신기해 했다. "이쪽으로 올라가면 숙소가 있던 자리요. 아침마다 숙소로 놀러오는 열 살 난 소년이 있었는데. 앞마당에서 농구를 하면서 친해졌소. 아이에게 마크 트웨인의 소설 '톰 소여의 모험'과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사줬지. 지금은 마흔 다섯의 중년이 됐을 겁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즐거울 텐데. 집 앞을 지날 때마다 그 애 엄마가 '따이한이 왔다'며 아이를 부르던 게 생각납니다." 황씨는 자신이 묵는 시내의 호텔이 CID가 있던 자리인 듯 싶다고 덧붙였다.
다낭을 따라 흐르는 한강 위 다리를 건너 호이안으로 들어간다. 호이안은 미군부대 본부대가 있던 곳이다. "이 길에 종종 군인들이 매복해 있었지. 지뢰도 깔려 있었고. 비포장도로였던 것이 포장만 됐을 뿐 바뀌지 않았군." 가게들이 나란히 선 넓지 않은 길은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한때 병사들이 숨어있던 길에는 아이들이 떼지어 놀고 개가 뛰어다닌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구나." 차 안에서 창 밖을 내다보던 황석영씨가 혼잣말을 한다. "그런데 왜 같은 인간이 그렇게 서로 목숨을 뺏겠다고 싸웠을까."
그것은 '전쟁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다르지 않다. 소설 '무기의 그늘'은 그 물음에 대한 답변이다. 베트남 정부에게, 미국 정부에게, 오로지 살아 남기 위해 떠도는 난민들에게, 그리고 아마도 한국인 참전 군인이 속해 있을, 어느 것도 책임지지 않는 '방외인'에게 전쟁은 제각기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 모든 시각이 '무기의 그늘'에 담겼다. "등장인물이 저마다의 목소리로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라고 황석영씨는 설명했다. 그는 "어느 한쪽의 눈으로만 전쟁을 묘사한 게 아니다"며 "소설의 영화화를 타진하는 제작사들도 '무기의 그늘'이 한쪽으로 치우친 시선만이 아닌 '카멜레온의 눈'을 가진 작품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제작사인 싸이더스와 할리우드의 파라마운트사가 '무기의 그늘' 영화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동행한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는 "다낭과 호이안의 건물과 거리가 옛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어서 놀랐다. 현지 촬영에 어려움이 없겠다"며 "베트남과 합작해 영화를 제작하는 것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베트남 '우정의 물꼬' 기대
황석영씨가 최근 깊이 있게 성찰하는 문제는 '아시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가 '오고 싶지 않은 마음'과 싸워가며 35년 만의 베트남행을 결정한 것도 이 문제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오늘 이곳(호이안)에서 뷔 콩 칸이라는 청년을 만나 얘길 나누었다. 그는 정서가 분방하고 발상이 자유로우며, 구김살 없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다. 칸은 자신의 부모가 한국인 참전 군인들을 미워하고 있다는 이야길 들려줬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만난 한국인들과 기꺼이 친구가 되고 싶어했다. 나는 칸을 통해 전후 세대가 전쟁에 대한 기억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시아인으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전날 하노이에서 베트남작가동맹이 마련한 환영회에서 황석영씨는 베트남 작가들 앞에 머리를 숙였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사과를 드린다"는 황씨의 말에 작가동맹 서기장 휴틴은 "베트남과 한국은 지리적, 문화적으로 많은 공감대를 갖고 있다. 이 만남을 계기로 두 나라 국민 간 진실된 우정의 물꼬를 트길 기대한다"고 답했다. 이날 만난 소설가 바오닌은 열일곱 살에 소년병으로 베트남전에 뛰어들었던 사람이다. 총을 겨누고 싸웠던 적이 이제는 술잔을 기울이며 웃음을 나누는 친구가 됐다. 한 베트남 작가는 "우리는 한국군과 싸운 게 아니라 박정희의 독재와 싸웠다"고 말했다. 그들이 보는 것은 과거가 아닌 미래다. "그것은 아시아 전체의 미래다. 나는 베트남에서 아시아인의 정체성을 발견했다"고 황석영씨는 힘있게 말했다.
/다낭=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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