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저고리의 역사는 곧 패션의 역사였습니다. 한복디자인이 늘 똑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저고리 패션의 변천과정을 통해 옛 여인들의 탁월한 패션감각과 옷을 입는 정성까지 엿보게 해주는 자리로 만들고 싶습니다."한복디자이너 김혜순(47)씨가 '한국복식문화대전 1- 저고리 600년 변천사'라는 이름으로 10월 2∼12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전시회를 갖는다. 저고리 변천사의 고증복원은 '한복디자이너의 꿈'이라 불려온 한복계의 숙원사업. 빈틈없는 복원을 위해서는 철저한 학문적 연구가 필수인데다 제작비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김씨의 경우 한국복식사의 원로 유희경 박사로부터 고증을 받고 전국 팔도의 유물전시관을 찾아 다니며 고분출토 유물의 본을 뜨고 조선시대의 손바느질법까지 그대로 살려가며 제작, 모두 60여점의 작품을 내놓기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다. 개인적으로는 작고한 삼촌이자 한복디자이너였던 허영씨의 평생에 걸친 숙원을 대신 이룩했다는 기쁨도 크다.
그는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옛 여인들의 엄정한 장인정신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한다. "재봉틀도 없는 시절 저고리 안감조차 일일이 손바느질을 했는데 한땀 한땀 길이가 1㎜ 예요. 날렵하게 올라간 앞섶은 한치라도 흐뜨러질세라 숨을 멈춘 채 해야 할 정도로 얼마나 섬세한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옛 사람들의 장인정신에만 탄복한 것이 아니다. "저고리는 한복의 트렌드를 가장 민감하게 보여주는 품목인데 시대에 따라 앞섶의 길이와 배색, 소매폭의 조절 등을 달리한 것을 보면 당시 여성들이 집안에 갇혀 살면서도 얼마나 복식미에 신경 썼는지를 잘 드러냅니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걸쳐 엉덩이까지 내려오던 길이의 저고리는 조선 초기 들어 허리 아래로 짧아졌다. 근세로 오면서 급격히 짧아져 영·정조 시대에는 소매폭과 저고리 폭을 똑같이 재단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19세기 들어서는 젖가슴이 거의 노출될 정도로 저고리 길이가 짧아졌다. 당시 패션리더였던 기생들에서 유래한 패션이지만 여염집 부인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저고리 연구는 당대의 풍속 연구이기도 하다. 속적삼의 경우 보통 분홍모시저고리를 입었는데 시집살이가 힘들 때도 속 시원하게 살라고 한겨울에도 모시로 지어주었다. 소매의 끝동이나 겨드랑이 곁마기에 색상이 다른 천을 대 장식하는 풍습도 실상은 닳기 쉬운 이 부분의 천만 새로 갈아주어 멋과 실용성을 겸비하기위한 것이었다.
김씨는 앞으로도 서민복과 치마 아동복 등 한복의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복원작업을 시리즈로 계속할 예정이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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