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요조숙녀'에는 BBS 얼굴 마사지기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한다. 민경(김희선)이 쇼핑 중 이 제품을 시연해 보며 즐거워 하는가 하면, 침대에 누워 마사지를 하며 회상에 잠기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방송 후 이 제품은 불티나게 팔렸다. 최근 종영한 KBS2 '보디가드'에는 경탁(차승원)과 동생 경미(마야)가 아이들이 공원에서 바퀴가 셋 달린 트라이크(트위스트 보드)를 타는 걸 보고 부러워 하는 장면이 나왔다. 기존의 두 바퀴 킥보드에 비해 안전하다는 '친절한' 설명도 함께였다. 2주 후에는 경미가 이 제품을 구입해 타고 등장했다. 광고가 따로 없다.이른바 'PPL'이라 불리는 드라마 속 간접광고가 갈수록 늘고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다. 경실련 미디어워치팀은 23일 지상파TV 간접광고 실태 보고서를 내고 "공공재인 방송을 사적으로 이용하는 간접광고의 확산을 막을 근본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드라마인가, 광고인가
요즘 간접광고는 단순히 상품을 비추는 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 전개의 핵심 모티프로 사용하거나 줄거리와 관계없이 특정 상품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만들어 넣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요조숙녀'는 간접광고 종합선물세트나 다름없다. 마사지기 외에 '퀵 롤러'라는 바퀴 달린 운동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 등이 수시로 등장한다. 드라마 홈페이지에는 김희선이 걸친 옷과 액세서리 등을 모아 파는 LG홈쇼핑 '요조숙녀 코너'로 바로 연결되는 배너가 떠 있다.
MBC '좋은 사람'은 학습지 교사인 순정(한지민)이 나오는 대목에서 '웅진씽크빅' 로고를 수시로 비추고, 드라마가 끝나면 한지민이 모델인 웅진씽크빅 CF가 이어진다. KBS1 '노란손수건'에서도 자영(이태란)과 영준(조민기)이 장만한 가구의 브랜드를 앞의 한, 두 글자만 테이프로 가려 '이노센트'란 상품명 유추가 가능했다. 이 가구 CF의 모델은 바로 이태란이다.
협찬사와 이름이 유사한 회사를 등장시켜 홍보해 주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요조숙녀'에 나오는 코리아항공과 SUNY는 대한항공과 SONY, SBS '스크린'의 주 배경인 세가박스는 메가박스, KBS2 '저 푸른 초원 위에'의 DM JAEWOO는 GM DAEWOO를 살짝 바꿔놓았을 뿐이다. 또 거액의 제작비를 대는 협찬사 상품 '끼워넣기'는 일반적인 PPL보다 더 노골적이다.
나는 편법, 기는 규제
방송위원회는 '간접광고와의 전쟁'을 선언했지만, '방송심의규정'에는 PPL을 금지하는 조항만 있을 뿐 구체적 심의기준이 없고 제재 수위도 낮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방송위의 지상파 방송 심의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 1∼8월 심의에 오른 268건 중 심의사유 1위는 간접광고로 117건, 43.6%에 달했다. 협찬고지 위반도 54회, 20.1%. 그러나 간접광고로 제재를 받은 93건 중 사과방송 등 법정 제재는 한 건도 없고, 경고 및 프로그램 관계자 경고(6건) 경고(46건) 주의(41건)에 그쳤다. 협찬고지 위반 제재도 경고 9건, 주의 24건뿐이었다.
건당 3억∼4억원이란 말이 나돌 정도로 막대한 간접광고 수입이 어떻게 쓰여지는지 알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보고서는 방송사들이 이를 기타 수입으로 분류해 규모와 사용처를 비공개하고 방송발전기금 징수대상에서도 빠져 있어 '음성적 거래'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 관계자는 "간접광고와 협찬에 대한 구체적인 심의기준을 마련하고 제재를 강화하는 한편, 관련 수입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방송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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