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장기 불황 속에 일본인들의 생활이 점점 빡빡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일본은행이 발표한 2003년 '가계 금융자산 여론조사'에 따르면 예·저금, 주식, 보험 등 저축(금융자산)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은 가정이 21.8%에 달했다. 세계 최고의 저축 국가인 일본에서 무저축 가정 비율이 20%를 넘은 것은 이 조사가 시작된 1963년 이후 40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 가계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6월말부터 7월초까지 전국 6,000세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는 1년전에 비해 저축이 감소한 가정이 51.1%였고, 저축감소 이유로 59.6%가 "정기적인 수입이 줄어 저축을 깼다"고 답했다.
이 같은 경향을 나타내는 수치는 또 있다. 국세청의 '민간급여실태통계조사'에서는 민간 기업 급여소득자의 지난해 1년간 평균 급여(상여금 포함)가 전년에 비해 6만 2,000엔(1.4%) 줄어든 447만 8,000엔으로 5년 연속 하락추세였다. 급여소득자수도 37만 3,000명 줄어든 4,472만 4,000명으로 나타나 기업 도산 및 구조조정으로 인한 해고와 임시직 전환이 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소득감소는 비급여소득자에게 더욱 심해 20세 이상 자영업자, 학생, 영세기업 근로자 등이 가입하는 국민연금의 보험료 미납입률이 지난해 37.2%에 이르렀다.
도쿄(東京)에서는 이 같은 급여와 소득 감소로 오피스가에 한끼에 500엔인 '원 코인' 도시락 가두판매가 성업 중이고 보통 한 그릇에 500∼800엔인 라면을 180엔에 파는 체인점까지 등장했다. 도쿄 근교의 신흥 베드타운인 하치오지(八王子)시에 1995년 건축 당시 평균분양가 5,724만엔이었던 24∼30평형 미분양 아파트가 평균 1,927만엔에 재분양되는 중이다.
반면 금융자산을 보유한 가정의 평균 보유액은 1,460만엔으로 3년만에 과거 최고치를 경신해 눈길을 모았다. 가계 금융자산 여론조사를 맡은 일본은행 금융홍보중앙위원회는 "가정 간 저축 격차가 확대돼 양극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100엔숍'에 이어 '90엔숍' '50엔숍'이 생겨나는 가운데에서도 '1만엔 숍'이 등장하고, 시부야(涉谷) 긴자(銀座)의 명품거리에는 올들어 전 세계 최고급 브랜드숍이 속속 개점하는 것은 이 같은 양극화 경향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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