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의 막이 올랐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첫 국정감사인 동시에 16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인 셈이다. 특히 올해 국정감사는 신 4당 체제의 출범과 맞물려 시작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총선을 앞둔 국정감사이기에 부실로 얼룩질 수도 있지만 신 4당 체제 아래 새로운 국정감사의 모습을 보일 가능성도 있어 기대를 가져봄 직하다.집권당이 사실상 붕괴된 상황에서 제 1당인 한나라당의 국정 부담은 가중되었고, 이에 따라 국정감사에 임하는 자세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야당으로서, 동시에 원내 다수당으로서 견제와 책임정치의 구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민주당 역시 국감을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었다는 적대감이나, 실망감만으로는 국정감사를 제대로 해 나갈 수 없다.
탈당을 감행하면서까지 개혁을 대의명분으로 삼아 딴 살림을 차린 통합 신당으로서는 이번 국정감사가 새로운 정치행태를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첫 실험무대인 셈이다. 국정감사 이전에 교섭단체를 구성한 의도 역시 국정감사를 통해 무언가 차별성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닌가. 대통령당임을 거부하고 있는 입장에서 통합신당은 과연 어떠한 자세로 국감에 임할지 관심거리다.
통합신당은 국정감사를 통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새로운 정치를 국민들에게 보여줄 때 신당 창당의 당위성을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다. 동시에 새로운 정치 행태가 기존 정당의 국감 행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면 그것은 통합신당의 발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반면 통합신당이 현실적 한계를 빌미로 개혁적인 정치를 펼치지 못할 때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역시나' 하는 국민의 실망감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당체계가 어떻게 변하든, 또한 그것이 복잡한 고등수학으로도 풀기 어려운 여무야다(與無野多)의 역학관계라 할지라도, 국정감사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관련 정치행위자들이 헌법 조문으로 돌아가 국정감사의 본래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국회는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제도를 십분 활용하여야 한다. 국정감사는 우리나라 국회가 갖고 있는 독특한 권한으로서 유신과 5공화국 시절의 공백기간을 거쳐 민주항쟁을 통해 다시 얻어낸 행정부 견제장치임을 명심해야 한다. 비대해져 가고 있는 행정부를 효율적인 행정부로, 군림하는 행정부를 봉사하는 행정부로 만들어야 한다는 국민 여망을 제도화한 것이다. 법에 따라 정책을 제대로 수행했는지,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지 않았는지를 밝혀 내년 정부예산을 철저히 심의할 수 있는 토대로 삼아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를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기회로 삼아서는 곤란하다. 과거 국정감사를 통해 관련 이해당사자를 압박하여 정치후원금을 확보한다든가, 지역구의 공공사업을 챙기는 기회로 삼았던 악습을 되풀이해서는 절대 안 된다.
최근 내년 총선을 맞아 국회의원 정족수를 늘려야 한다는 일부 주장이 있고, 우리나라의 인구수와 경제규모, 국정의 폭을 생각할 때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의 질적 잣대로 의정활동을 평가할 때 정족수를 늘리는 것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는 유권자가 많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텅 빈 국정감사장을 바라보며, 별 내용도 없이 큰소리로 행정부처를 힐난하는 국회의원을 보며, 어느 국민이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고 말하겠는가. 국회의 모습이 변해야 한다. 변화하지 않으면 유권자들이 내년 4월 그들을 바꿀 터이니까.
이 정 희 한국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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