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대의 불교사원인 보로부두르. 1년 내내 순례자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남부에 위치한 도시 족자카르타.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는 아니지만 어느 곳 못지않게 다양한 종교문화가 상존하는 이색적인 곳이다.
주민의 95%가 이슬람교도여서 이슬람문화가 도시 전체를 지배하지만 사람들이 이 곳을 방문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세계 최대규모의 불교사원인 보로부두르(Borobudur)와 동남아 최대의 힌두사원인 프람바난(Prambanan)을 보기 위해서다. 모두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유적들이다.
화산재에 뒤덮여 1,000년 세월 동안 역사속에서 사라졌다가 지금 모습을 갖춘 것도 불과 20~30년 전이다. 세계 몇 대 불가사의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발리섬과 함께 인도네시아의 대표적 관광지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사라진 고대문명의 흔적을 좇는 탐험가의 마음으로 두 사원을 찾았다.
보로부두르-난해한 불교세계관을 형상화
족자카르타 시내에서 서북쪽 40㎞에 위치한 보로부두르(언덕위의 사원이라는 뜻)로 가는 길은 엄청난 비밀을 간직한 유적이 근처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평지의 연속이었다. 이 같은 느낌은 사원이 가까워지면서 탄성으로 바뀐다.
높이 42㎙, 한 변의 길이가 120㎙에 달하는 피라미드와 흡사한 형상. 언덕을 쌓은 뒤 현장에서 수백리 길인 메라피화산에서 가져온 높이 23㎝의 안산암 100만개를 조각 맞추기 하듯 붙여서 완성한 역작이다.
사원안으로 들어서자 탄성은 어느새 경외심으로 바뀐다. 단순한 사원이 아니라 오묘하고 난해한 불교사상을 형상화한 설법도량이다.
모두 9층. 아래 2개 층은 불교의 욕계(欲界), 3~6층은 색계(色界), 7~9층은 무색계(無色界)를 표현한다. 욕계의 상징인 아래 2개 층은 붕괴의 우려가 있어 땅속에 묻혀 있다.
보로부두르 감상의 백미는 색계층 회랑(回廊)에 조각된 1,800여개의 부조(浮彫)다. 3층 제1회랑 상단에는 ‘방광대장엄경’ 중 ‘초전법륜’(석가의 탄생에서 깨달음까지의 과정), 하단에는 석가의 전생을 그린 ‘본생담’이 조각돼있다. 4층(제2회랑)~6층(제4회랑)은 선재동자가 53명의 현인을 만나면서 겪는 ‘화엄경 입법계륜’의 이야기가 상세하게 기록돼있다. 벽돌에 새겼지만 나무조각 이상으로 정교하다. 1만명이 넘는 등장인물이 이야기 내용에 따라 표정을 달리하고 있는 것도 놀랍다.
각 회랑 앞에는 조각을 지키는 등신불이 모셔져 있다. 각 면마다 108기씩 모두 432기다. 그러나 대부분 머리가 없다. 온전한 불상은 10여개에 불과하다. 화산폭발로 일부가 파괴되기도 했지만 이후 이교도와 서방인의 도난과 약탈에 의한 것이 더 많다는 것이 현지인의 설명이다.
거대한 불교문화 전람회를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난다. 무색계층이다. 부처님이 모셔진 72개에 달하는 불탑(스투파)의 진열장이다. 색계를 초월한 정신적 세계다.
불탑들 위에 우뚝선 불탑은 진정한 해탈의 상징이다. 이 불탑이 있어 마침내 보로부두르의 모습은 또 하나의 거대한 불탑형상을 띤다. 보로부두르판 화룡점정(畵龍點晴)이다.
8~9세기 당시 이 지역 북부에서 거대한 불교세력을 구축한 샤이렌드라 왕조가 수십만명의 인부를 동원, 70~200년에 걸쳐 건설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러나 건설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물의 재료를 제공한 메라피화산의 폭발로 생긴 화산재에 뒤덮여 천년 이상 자취를 감추고 만다.
1814년 황폐한 모습으로 다시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보로부두르는 2~3번의 복원작업이 이뤄지다가 1973~83년까지 유네스코의 노력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프람바난 사원-슬픈 전설을 간직한 힌두예술의 극치
족자카르타 시내에서 동쪽으로 17㎞ 지점에 위치한 프람바난 사원은 샤이렌드라 왕조와 동시대에 전성기를 누린 상자야왕자 지배하의 힌두교국인 마따람 왕조가 세운 사원이다. 보로부두르가 지어진 지 100년 뒤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언뜻 보면 캄보디아의 유적 ‘앙코르와트’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이보다 연대가 200년을 앞선다. 이 역시 왕조의 쇠퇴와 화산폭발로 인해 천년 세월을 역사의 뒤켠에 파묻혀 있었다.
프람바난은 엄밀하게 말하면 찬디(Candi)라고 불리는 첨탑모양의 사원 220여개가 모여 있는 사원군이다. 현재 10여개의 사원은 복원됐으나 나머지는 무너진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있는 사원만으로도 프람바난의 명성은 모자라지 않다. 특히 중앙에 서있는 높이 47㎙의 사원은 동남아 힌두문화의 극치로 평가받고 있다.
사원앞에 서면 미묘한 원근감에 이끌려 높이가 2배 이상으로 보이는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힌두교의 시바여신을 모신 이 사원은 입체적인 굴곡감으로 마치 볼륨감있는 여성을 형상화한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슬픈 전설이 하나쯤 전해올 법한데, 실제로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로로종그랑(야윈 소녀)이라는 처녀를 흠모하는 한 사내가 있었다. 이 처녀는 사내가 하루 밤에 사원 1,000개를 지으면 자신과 결혼하겠다고 약속한다. 사내가 마법의 도움으로 999개를 짓고 나머지 한 개를 건립하려는 순간, 처녀는 닭울음 소리를 흉내내 새벽이 온 것처럼 속여 사내와의 약속을 깨버린다. 화가 난 사내가 이 소녀를 둔갑시켜 1,000번째 사원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사원의 별명도 로로종그랑이다.
사원내부에는 라마왕자의 파란만장한 무용담을 기록한 대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라마왕자가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사원주위에 조명을 밝히고 이를 배경으로 라마야나를 주제로 한 발레공연이 펼쳐진다.
/족자카르타=글ㆍ사진 한창만기자
여행수첩
이전에는 한국에서 족자카르타까지 당일로 가는 비행편이 없었지만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을 이용하면 이제는 하루 만에 도착할 수 있다. 매주 월, 수, 금 오전 11시30분 인천공항을 출발, 오후 5시25분(현지시각)에 발리에 도착한 뒤, 오후 6시40분 족자카르타행 비행기를 타면 된다. 물가가 저렴해 하얏트 리젠시 족자, 쉐라톤 무스티카 등 특급호텔도 10만원안팎(2인 조식포함), 플라자 등 1급 호텔은 절반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첫날 일정이 빡빡하다고 느끼면 이튿날 오전 6시 발리에서 족자카르타로 출발, 당일 관광을 즐긴 뒤 오후 7시30분 비행편으로 발리로 돌아와도 된다. 발리는 미국의 권위있는 여행레저잡지인 ‘트래블 앤 레저’지가 지난 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세계 최고의 섬으로 선정한 곳이다. 휴양과 답사관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특히 가루다항공은 당분간 여행사를 통하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1인당 미화 120불가량에 달하는 족자카르타 국내선 왕복항공료를 면제해준다. (080)773-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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